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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Mar 14. 2023

예고편 : 아이 둘 워킹맘의 복직일기

대학 동기와 통화를 했다. 자기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은 동기는 몇 해 전 바라던 직장에 취업을 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 결혼을, 또 얼마 후 출산을 했다. 모처럼의 통화에서 동기는 새로운 근황을 전한다.


"회사? 벌써 그만뒀지. 작년 3월이었으니까 벌써 1년 전이네."


퇴사라니. 최종합격 소식을 방방 뛰는 목소리로 전하던 그녀가 불과 몇 년 만에 퇴사라니.


"육아휴직 끝나고 출근한 지 사흘 만에 결정했어. 일주일 지나서 사직서 냈고. 도저히 안 되겠더라. 도저히."


생후 15개월 된 아이를 겨우 떼어놓고 출근한 복직 첫날부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단다. OO가 열이 나서 병원 데려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듣다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일부터 나도 다시 워킹맘이다. 이번에는 아이가 둘이다.




동기가 퇴사하던 무렵 동기네 아이의 월령과 같은 생후 15개월의 우리 둘째는 3월 초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사흘간 엄마와 함께 보내는 적응기간을 거쳐 지난주 화요일부터는 엄마 없이 어린이집에서 생활한다.


복직 전까지 주어진 엿새 동안의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오래전부터 그려왔다.

쓰다 만 글 마무리, 코인노래방, 영화, 소설, 세차, 사우나, 대청소, 이불 빨래, 휴대폰 사진 정리...

달력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적어둔 버킷리스트가 가득했다.


정작 복직을 하루 남겨둔 오늘까지 한 일은 두 아이 데리고 병원 다니기, 이불 빨래, (대청소까지는 아닌 그냥) 청소, 안 쓰는 물건 처분, 드라마 스위트홈 보며 떡볶이 만들어먹기 정도다. 자유시간이 생기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아무 방해도 없는 환경에서 글쓰기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글을 쓰기가 어려운 며칠이었다. 범인은 머릿속에 있었다. 조용히 글을 쓸라치면 자꾸만 복직 후에 일어날 다이내믹한 생활이 상상되는 거다.




아침. 빨래, 청소를 포함한 집안일은 아이들 일어나기 전에 마무리.

점심. 6시에 칼퇴할 수 있도록 초초초 집중해서 일하기.

저녁. 아이들과 적어도 한 시간은 밀도 있게 놀아주기.

밤. 야근이 불가피하다면 아이들 잠 잘 준비 마치고서 다시 회사에 가서.


잘게 쪼갠 시간 안에 밀어 넣으면 육아든 일이든 무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내게 주어지는 역할이 내 사정을 봐가며 줄을 서서 차례차례 오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중요한 회의 중에 아이를 데려가달라는 어린이집 전화를 받는 날도 있을 테고 하원시간을 코앞에 두고 긴급한 업무지시를 받는 날도 있을 테니까. 전염병이라도 걸려 기약 없이 등원을 못하는 상황만은 부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르르)


아직 복직 전인데 뒤숭숭한 마음이 먼저 와 버렸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마음이 외롭고 어수선할 때마다 날 도운 글쓰기.

글을 써야 할 때가 또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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