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 발레리나 웬디 휠런
뉴욕 시티 발레단에서 30년간 활약한 수석 발레리나 웬디 휠런은 2014년 가을 공연을 끝으로 은퇴한다. <그녀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는 2012년 사고 이후 엉덩이 관절과 척추측만증으로 요통에 시달리던 그가 30년이 되는 2014년 성공적인 고별 공연을 마무리하는 2년간의 여정을 그린다.
커리어의 끝은 언제나 두려울 것이다. 3살 때부터 춤을 췄기 때문에 자신이 춤을 추지 않는 걸 상상하지 못할 땐 더 그렇다. 휠런은 엉덩이 관절 수술을 하고 재활하는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내가 다시 춤을 출 수 있을까? 예전처럼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발레단에서 내가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발레리나라면 이미 은퇴했을 47세에, 수많은 동료들이 은퇴한 걸 지켜봤기에, 그의 두려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휠런은 두려움을 춤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현대무용으로 영역을 넓혀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새로운 공연을 만들었으며, 성공적인 은퇴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마지막 무대는 자신의 댄스 파트너였던 크레이그 홀, 타일러 앵글이 함께 한 삼인무였다. 공연은 발레 문외한도 그 파워와 테크닉에 입을 쩍 벌리고 보다가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정도로 환상적이다. 휠런은 그렇게 컴퍼니 발레리나로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영화는 한 분야에서, 그것도 몸을 써야 하는 ‘춤’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한다. 휠런의 몸과 마음 관리는 정말 철저하고,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고통과 어려움을 참아내는 모습은 놀라웠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세는 모든 댄서들의 존경을 받는다. 마지막 공연 때 후배 댄서들이 무대 옆에 옹기종기 모여 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휠런은 은퇴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건 발레단 예술감독이 그를 공연에서 제외하면서부터다. 휠런은 자기 몸 상태는 (발레 댄서임을 감안하면) 언제나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공연에서 빠지게 되는 걸 자각한 후 몸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고 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후배들도 어느 순간 배역을 받지 못하자 은퇴해야 했었다고 말했다. 발레가 말 그대로 몸을 갈아서 만드는 예술이다 보니 댄서들의 생명은 짧으니, 더 할 자신이 있어도 만드는 이들은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이후 휠런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크레디트에 나오는 “그녀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 전미 투어 외에도 아메리칸 시티 발레단에서 작품 활동을 잠깐 했고, 대학교에도 잠깐 머물렀다. 그리고 2019년 2월 뉴욕 시티 발레단의 부예술감독으로 취임해, 신임 예술 감독 조너선 스태포드와 함께 컴퍼니를 이끌고 있다.
웬디 휠런의 부임이 일종의 세대교체이며 급격한 변화라는 점에서 예상 가능하지만 발레단에도 성폭력 문제가 존재했다. 오랫동안 발레단을 이끈 예술감독 피터 마틴이 단원을 성추행하고 정신적 학대를 했다는 혐의가 제기되자 마틴은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사직서를 제출했고, 발레단은 여성 댄서의 몸 사진을 돌려본 혐의로 남성 무용수 세 명을 내보냈다. 피터 마틴은 휠런에게 오랫동안 좋은 스승이었지만 한편으로 “네가 쇠락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라며 은퇴를 종용했던 인물이다. 그러니 보그에선 “시적 정의가 내려진 것”이라 말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