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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Apr 18. 2020

극장을 못 간 자의 일상

코로나19 이야기

이 공간엔 원래 영화 이야기만 올리는데, 오랜만에 일상 이야기를 할까 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한 동안 소소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극장에 안 간지는 2달이 다 되어간다

정확히는 2월 23일 <작가 미상> 3차 관람 이후엔 극장 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나름 업계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정말 필요하면 가야 하는 건 알지만, 한편으로는 위험을 무릅쓸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개봉작 리스트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갈등하지만, 귀차니즘과 막연한 두려움이 언제나 이긴다.


그 사이 이사를 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창궐한 시기에 이사를 했다. 지난 4년 간 살던 집이 이제 내 짐을 다 넣을 수 없을 만큼 좁아졌기 때문이다. 최소한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이라도 할 공간을 찾기 위해 2월 초에 이리저리 집을 구하러 다녔다. 다행히 조건에 맞는 집을 하나 골라서 계약했다. 이사 기간은 다소 넉넉하게 잡았다. 계약도 잘했고, 잔금도 잘 치렀으며, 확정일자도 잘 받아놔서 안심했다.

작은(?) 문제가 들어가기 직전에 일어났다. 이삿날 아침 부동산에서 급히 연락이 왔는데, 전 세입자가 집을 너무 더럽게 써서 도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알았다고 했지만, 얼마나 심각하길래 도배를 다시 해야 할까 궁금했다. 부동산에 청소하는 분들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청소와 도배 작업이 같이 이루어졌고, 나는 이삿짐을 옮겨줄 분들과 새 집으로 향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곰팡이가 엄청났다더라. 집을 구경하던 날도 다소 습하고 더워서(2월인데!) 약간 불안했지만 보기엔 깔끔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예상보다 훠어어얼씬 심각했다. 청소하는 분들이 락스를 들이부었는지 냄새가 코를 찔렀고, 급하게 도배해서 벽이 울퉁불퉁했다 (지금도 좀 그렇다). 어찌 됐든 이사는 잘 마쳤고, 부직포와 물걸레로 대강 바닥을 닦고 이불을 펴고 잠들었다.


가구 고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집은 4대 옵션(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하이라이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는 내가 일일이 다 구매해야 했다. 집주인 사장님이 작은 옷장은 하나 줬지만, 침대와 식탁을 사야만 했다. 침대의 경우 큰 사이즈는 필요하지 않아서 정말 작은 걸로, 내 몸 하나 뒤척여도 될 만한 걸로 샀다. 반면 식탁은 혼자 쓰지만 무조건 큰 걸 사야 했다. 식탁은 밥을 먹는 공간이자 작업하는 공간, 요리하는 공간으로 써야 해서 4인용을 샀다.

내가 가구를 직접 사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이전 집도 침대와 책상 모두 옵션이어서 걱정 없이 들어갔었다. 이번에 인터넷으로 가구를 주문하면서 가구 배송이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걸 알았다. 다음 이사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더는 가고 싶지 않다) 그땐 지금보다 더 단단히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만족도 높은 생활용품

이사를 하니 살림을 1부터 다시 꾸려가는 재미가 있다. 식탁과 침대 말고도 필요한 물품들을 샀고, 그 김에 정말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몇 가지 아이템을 구매했다.

보쉬 전동 드라이버. 손에 잘 쥐어질 만큼 작고 귀엽고 잘 돌아간다. 작은 책장이 필요해서 싼 걸 사서 조립했는데 10분 안에 조립을 끝냈다. 역시 자취하는 여자 사람에겐 전동드라이버가 꼭 필요하다.

브리타 정수기. 플라스틱 생수병이 많이 나와서 새집에선 무조건 정수기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렌트 정수기나 무전원 필터 정수기를 살까 했지만, 다시 조사하면서 둘 다 싱크대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브리타 정수기를 찾아봤고, 자취하는 사람들은 마렐라 XL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서 바로 샀다. 일단 물맛은 대만족이다. 수돗물 냄새가 정말 안 난다. 보리차 티백과 1.5L 트라이탄 물병까지 구비해 놓으니 너무 든든하다. 보리차는 냉침으로 만들고, 분쇄 원두를 사서 커피도 냉침한다. 밥 짓기, 찌개나 찜 등 요리에도 정수물을 쓴다. 

오떼르 멀티쿠커. 이건 사실 서치한 건 아니고, 회사 대표님이 딱 한 번 사용한 걸 싸게 샀다(슬로우쿠커나 1구 하이라이트를 찾고 있었다.) 멀티쿠커라 용도는 다양한데 일단 찜, 수육을 해 먹는 데 집중한다. 한눈팔고 있어도 꺼졌다 켜졌다 하며 온도 조절이 되니 크게 신경 안 써도 된다.

에어프라이어나 토스트 오븐도 살까 고민했지만, 당장은 안 살 것 같다.


넷플릭스도, 왓챠플레이도 재미가 없는 날이 왔다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그런 날이 온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있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날이 늘었다. 밤에 스탠드 조명을 백열등 색으로 바꾼 후 다른 조명을 모두 끄면, 밤의 소음과 나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집은 지난 집보다 도로변이라 소음이 몇 배는 크다는 게 단점이다. 그래도 조망과 고요함을 포기하고 넓은 공간을 얻었다고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집 부부싸움 소리보단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덜 신경 쓰인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엔 너무 늙었나?

업무가 조금 변경되었다. 원래 하던 일도 있고, 새 서비스 개발을 서포트한다. 아직 뭐가 뭐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 회사에 들어와 많은 것을 익혔지만, 이건 정말 어나더 레벨이다. 그나마 대표님이 개발자의 언어를 평이하게 풀어서 설명해주시는 덕분에 회의 때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름대로 의견을 내고 반영이 되는 것도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더 도움이 되고 싶다. 머리 쥐어뜯으면서 하나하나 하고 있는 만큼 잘 되었으면 좋겠고.


조만간 리뷰글을 다시 쓰고 싶다

요즘 블로그도 브런치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회사에서 리뷰를 쓰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뭔갈 쓸 마음이 들지 않는다. 코로나 블루 때문만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해결 가능한지 고민만 거듭한다. 하루빨리 신나게 리뷰글을 다시 적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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