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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Jun 22. 2020

노예무역상과 친일파, 그들의 역사는 힘이 세다

영국 브리스톨 BLM시위를 통해 바라본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논란

올해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더 이상 놀라울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조지 플라이드 (George Floyd)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도 하지 않는 흑인 용의자를 8분 46초간 무릎으로 짓눌러 질식사시킨 이 사건은 뿌리 깊은 인종갈등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고, 전 세계에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고 외치는 Black Lives Matter (BLM) 시위가 시작되었다.  


비록 한국에서는 주된 관심사에서 조금 비켜나 있지만, 다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직까지도 매일 톱기사로 다뤄질 만큼 큰 이슈이다. 곳곳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다양한 캠페인과 시위가 계속되는 중, 지난 6월 7일 영국 브리스톨 (Bristol)에서 일어난 BLM 시위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성난 대중에게 끌어내려지는 동상은 전 세계에 직관적이고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는 왜 125년 된 동상을 파괴했을까

출처 - Metro News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1636-1721)은 영국 브리스톨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17세기 무역상인으로 큰 부를 축적했고, 브리스톨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도시를 대표하는 위인이 된 것은 말년 자선가로 큰돈을 기부하여 빈민 구호소, 병원, 학교 그리고 교회를 지어 도시 발전에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천안의 이순신 장군, 강릉의 신사임당, 고양의 권율 장군처럼 마찬가지로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건물, 공연장, 학교 등을 도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파괴된 동상이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콜스턴’ 회관 앞 ‘콜스턴’ 광장의 ‘콜스턴’ 동상이었으니 도시 내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종차별 시위대가 그의 동상을 파괴한 이유는 콜스턴이 이룩한 어마어마한 부의 기원에 있다. 그는 아프리칸 노예무역을 독점했던 영국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 (Royal African Company)’의 임원으로 13년간 약 84,000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해 아메리카의 설탕, 담배 대농장에 ‘수출’했다. 끔찍하게도 그중 19,000여 명은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그의 재산은 브리스톨 항구의 과부, 아동 그리고 빈민들에게 돌아갔다. 더불어 그는 재산을 기부할 때 본인과 정치·종교 성향이 다른 이들이 수혜 받지 않도록 강력히 원했다고 전해진다.    




자선사업가로 기록된 노예무역상, 그는 지난 300년 간 심판받지 않았다

출처 - CNN

1999년에 들어서야 ‘잔혹한 노예무역상이자 도시 최고의 자선가’라는 그의 이중적인 면모가 조명되기 시작됐다. 노예무역은 콜스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브리스톨이라는 도시의 번영을 이루는데 큰 기여를 한 무역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브리스톨 기득권층의 기원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노예무역 문제에서 자유로울 이들이 더 적을 것이다. 브리스톨은 현재에도 런던, 맨체스터 등 국제화된 대도시와는 달리 백인 거주 비율이 84%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많은 이들의 콜스턴의 과오를 밝히고, 도시에서 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2017년 예술가들은 콜스턴의 이름을 딴 공연장에서의 공연을 보이콧하기도 했고,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그의 동상 철거를 청원했다. 그러나 실제적 성과로 이어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의 이름을 딴 학교는 ‘학교에 실익 (No benefit)이 없다’는 이유를 개명을 거부했고, 시의회는 엄중히 고려한다는 입장만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노예무역상 콜스턴은 브리스톨 곳곳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6.25 전쟁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 친일파

출처 - Amazon

공교롭게도 같은 6월, 한국에서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국립묘지 안장 찬반 논란이 일었다. 보훈처 직원이 찾아와 법안 개정 시 국립묘지에 장군님을 안장하더라도 다시 뽑혀 나갈 수 있어 걱정이라며 이야기를 했다는데, 이 사안에 보수진영은 정부가 마치 그를 협박이라도 한 양 즉각적인 반발하고 일어섰다.  


6.25 전쟁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백선엽 장군,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그의 친일 전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그가 6.25 전쟁 당시 사단장으로 복무했던 육군 1사단에서 복무했다. 주말 정신교육 시간에 대강당에 모여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를 지휘하고, 반격의 선봉으로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다는 그의 업적을 칭송한 비디오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천하제일 1사단’ 사단가가 울려 퍼지는 비디오 속 멋진 장군은 많은 국군 장병들의 기억 속에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올해 만 100세를 맞이한 그의 업적은 긴 세월 동안 ‘백선엽이 곧 전쟁기념관’이라 존경받으며, 각종 출판 서적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반면, 그의 친일 전적은 2009년에서야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포함되며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는 일제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부터 일제 패망 순간까지 만주국 장교로 복무했다. 특히, 그는 간도 지역 항일연군 토벌을 목적으로 한 간도특설대에 3년 동안 복무했는데, 당시 항일연군에는 중국인, 만주인과 함께 조선인 독립군도 활동했다. 비록 본인은 직접 독립군과 싸운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이 것이 사실이더라도 일제를 위해 패망 그 순간까지 장교로 복무한 것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공과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논란이 된 두 인물, 에드워드 콜스턴과 백선엽. 그 둘의 공통점은 힘센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같은 맥락의 공과(功過)를 공유하는 기득권층은 오랜 시간 그들의 어두운 과오보다 빛나는 공적을 조명해왔다. 그렇게 나는 역사의 이면을 살펴보지 못한 채 쾌적한 콜스턴 거리를 거닐었고, 자랑스러운 구국의 영웅으로만 백선엽 장군을 기억했다.


그러나 브리스톨에는 콜스턴 동상을 마주할 때마다 모욕감을 느꼈던 흑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호의호식하는 친일파 후손들과 대조되는 기사를 보며 가슴 한 켠이 시큰거리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있다. 역사는 오랜 시간 힘센 노예무역상과 친일파의 편이었다.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의 명판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 명판에는 ‘브리스톨 시민들이 도시에서 가장 고결하고 현명한 이를 위해 세움’이라고 적혀 있다. 분명 그는 도시 발전과 빈민 구제에 기여한 자선가이지만, 수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이를 가장 고결한 도시의 인물로 꼽기에는 부끄럽지 않은가. 기지 넘치는 2020년의 BLM 시위대는 단 두 개의 알파벳만으로 그를 위인으로 ‘세우지(ERECTED)’ 않고, ‘거부(REJECTED)’했다.


백선엽 장군은 분명 6.25 전쟁의 영웅이지만, 그의 공적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면 그의 과오에서 오는 부끄러움은 후손들이 맡게 될 것이다. 그는 군사정권의 비호 하에 동생 백인엽과 함께 설립한 인천 선인재단에서 극심한 사학 비리와 부패를 저질렀다. 또한, 2010년 3심까지 갔던 장남과의 골육상잔(骨肉相殘) 강남역 덕흥빌딩 진정명의회복 소송을 통해 차명 부동산 투기 및 수천억 대 자산 부정축재 사실이 드러났다. 나라를 구한 6.25 전쟁 영웅이시니 수천억 자산 부정축재는 눈감아 주어 당연한 것인가.  




그들의 힘은 셌지만, 영원하지 않았다

출처 – Bristol Post

브리스톨 시(市)는 이후 콜스턴 문제를 나아갈 방향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BLM 시위대에 의해 항구에 던져진 동상은 건져 올려 박물관에 전시하기로 결정됐고, 그의 이름이 붙여진 건물과 거리는 새로운 이름을 공모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과연 동상을 옮기고, 거리 이름을 바뀌면 인종차별이 해결되느냐고.


그러나 대중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향후 사회가 균형 잡힌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2020년의 범세계적인 BLM 시위는 분명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실례로 이번 BLM 시위를 계기로 에드워드 콜스턴의 후손은 브리스톨 시장에게 노예무역으로 피해 입었던 서아프리카 도시들과 결연을 통해 개발 원조를 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출처 - flickr

백선엽 장군 그리고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논란 또한 마찬가지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파묘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친일잔재가 청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훈 개념에 대해 활발히 논의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이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후손들이 국가 유공자의 애국정신을 후손들이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훈일 것이다.


나아가 이 논의의 끝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있다. 백선엽 장군은 현충원에 안장되고 싶으셨다면 적어도 일찍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정중히 사죄하고 겸허히 역사의 평가를 받았어야 한다. 나아가 친일파 후손들을 불러 모아 사죄하는 마음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자선사업이라도 하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유족들이 구성한 광복회는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을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생존해 있는 당사자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과오를 덮을 공적이 있으니 친일 전적은 넘어가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얼마나 뻔뻔한가. 이런 주장이 오늘날 경제발전에 기여했으니 재벌들의 비리 범죄를 감면해주자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예무역상과 친일파, 그들의 역사는 힘이 셌지만 영원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콜스턴의 과오가 평가받는데 그의 사후 300년, 그의 동상이 쓰러지는데 1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걸렸지만, 브리스톨 시민들은 끈질기게 친절한 자선사업가의 어두운 이면을 기억했다. 우리도 친일파의 과오를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한다면, 언젠가 친일잔재 청산 역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글은 딴지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628736890




참고문헌


Bristol City Council - The population of Bristol

https://www.bristol.gov.uk/statistics-census-information/the-population-of-bristol


BBC News - Who was Edward Colston and why is Bristol divided by his legacy?

https://www.bbc.co.uk/news/uk-england-bristol-42404825 


The Guardian - Bristol should make peace with slavery past, says Colston descendant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jun/17/bristol-should-make-peace-with-slavery-past-says-colston-descendent 


Mail - Bristol University plans to review its logo featuring Edward Colston after BLM protesters toppled slave trader's statue and dumped it in city's harbour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8414773/Bristol-University-plans-review-logo-featuring-Edward-Colston-BLM-protest.html 


한겨래21 - 한국인은 모르고 일본인은 아는 백선엽의 진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7320.html 


연합뉴스 - [팩트체크] 국립묘지 논란 백선엽, 친일·반민족행적 반성했나?

https://www.yna.co.kr/view/AKR20200529034200502?input=1179m 


조선일보 - 6·25영웅 백선엽 장군에 서울현충원 못 내준다는 보훈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7/2020052700104.html 


경향신문 - [조호연 칼럼]‘백선엽 논란’, 지체된 정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6170300085#csidxfd18a73a91437478a1868aba47a5cef


인천뉴스 -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있을 수 없는 일"

http://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279 


선데이저널 –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6.25전쟁영웅에서 부동산 사기꾼으로

https://sundayjournalusa.com/2018/04/19/%EB%8B%A8%EB%8F%85%EB%B3%B4%EB%8F%84-%EB%B0%B1%EC%84%A0%EC%97%BD-%EC%A0%84-%EC%9C%A1%EA%B5%B0%EC%B0%B8%EB%AA%A8%EC%B4%9D%EC%9E%A5-6-25-%EC%A0%84%EC%9F%81%EC%98%81%EC%9B%85%EC%97%90%EC%84%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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