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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Sep 09. 2020

너희들을 오래도록 기억할게

26살 서울시 성북구, 처음이자 마지막 교생실습 제자들에게 쓰는 편지

열심히 살아간 시간 뒤에는 분명히 성취의 순간이 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홍대부고를 배정받았을 때, 너희가 남자 담임 교생에 아쉬워했던 만큼 선생님도 아쉬웠단다. 나도 홍익여고를 가고 싶었거든. 처음 홍대부고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앞으로 더울 한 달 동안 어찌 출퇴근을 해야 할지 걱정도 앞섰어.


그런데 이렇게 4주라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지레 먼저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알게 됐어. 지금 너희들과의 이별이 이렇게 아쉬울지. 홍대부고에서 바라보는 성북동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울지. 교생을 시작하던 시절의 나는 알 수 없었지.


앞으로 너희들이 헤쳐나갈 하루하루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너희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겠지. 적어도 선생님은 그랬어. "공부 잘할 수 있을까? 공부 잘해서 대학 잘 가면 행복한가? 그렇게 열심히 살면 나중에 보상받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부정적인 생각이 맴돌지만 차마 밖으로 표현은 못하면서 공부만 했던 시절이었지.


그러나 선생님이 감히 너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열심히 살아간 시간 뒤에는 분명히 보람과 아름다운 추억이 생긴다는 것이야. 마치 내가 너희와 함께한 지난 4주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기쁨과 실망의 파동이 물결칠지언정 언젠가 성취를 느끼며 뒤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 오더라.


앞으로 너희는 시험 성적에 일희일비할 수도, 만족스럽지 못한 대학입시 결과를 얻을지도 몰라. 그래도 언젠가 돌이켜봤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할 거야. 우리는 그런 순간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거란다. 나 역시 그러했고 열심히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그러하더라.




그렇다면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열심히 산다는 것은 <구체적인 목표의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고 <주기적인 반성>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구체적인 목표의식>이라 함은 단순히 " 많이 벌고 싶어요, 재밌게 살고 싶어요,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같이 추상적이어서는  . 그렇다고 "20살에 군대 빨리 갔다 와서, 기술 배우고 취직할 거예요.", "내신 관리 잘해서 인서울 대학교를  거예요." 구체적인 목표의식으로   없지.


구체적인 목표는 너희의 감정과 욕구를 직시하면서 시작해야 한단다. 내가 인생에서 가지는 목표라는 것은 내가 이렇게 했을 때 행복하고, 어떤 것을 이루며 살아갈 의지가 생기는 일이어야 해.


선생님의 경우는 "나로 인해 남이 잘되는 것이 좋다."라는 것이 나의 본성이라고 정의했고, 본성에 맞는 일로 "보다 많은 이들이 평등한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도움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소외계층을 돕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나 때문에 남이 잘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 않니? 내가 언제 행복한지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목표의식을 가지기까지 선생님도 부단한 노력이 있었단다.


선생님이 이런 예시를 들었다고 목표의식이 도덕적이고 바른 욕구만으로 국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야. 이를테면 "나는 남보다 우월하고 싶어.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승리하는 것이 즐거워." 같은 목표가 나쁜 것은 아니야. 이를 위해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면 안될 일이지만 이런 본성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야. 나는 너희가 자신의 내면의 솔직한 감정과 욕구를 알아보는데 시간을 많이 들이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많은 경험을 하고, 시간을 따로 내어 많이 생각해보렴.


개인 면담에서 너희들에게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그걸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고 했지? 미안. 사실 그건 반만 맞는 말이야. 아무리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도 <구체적인 계획>을 짜지 않으면 열심히 살 수가 없어. 대부분의 계획이 너무 엉성해서 열심히 살지 않게 돼. 확실한 목표가 있지만 실천 해나가지 못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지.


꿈은 가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알아서 풀리는 마법이 아니야. 꿈을 이루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구체적인 계획이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구체적인 계획이라는 것은 그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준비되어 있고, 1년 뒤, 혹은 5년 뒤의 단기 목표가 세워져 있는 것이지.


아직 너희에겐 5년 뒤를 계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거야. 당장 너희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학업적으로 혹은 직업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금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공부계획 짜는 법은 인터넷과 온갖 서적을 통해 알 수 있어. 그래도 혹시 이해가 안 된다면 언제든지 선생님께 연락하렴. 수능 공부하는 것이라면 선생님이 아는 한 친절히 설명해줄게.


마지막은 <주기적인 반성>이었지? 반성이라고 하면 뭔가 하기 싫은 느낌이겠지만, 반성은 옛날의 일을 되돌아본다는 뜻이야.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은 일기일 거야. 아마 갑자기 매일매일 일기를 쓰기는 힘들겠지만,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별로 한 번씩은 글을 쓰는 것을 추천한다. 선생님은 글쓰기를 즐기는 편이야. 그리고 이것은 선생님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 중에 하나지. 왜냐하면 나는 인생의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시기에 써놓은 글들이 있어서 언제든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거든. 너희도 지금의 마음들을 주기적으로 기록하며, 그 기록하는 과정에서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많이 웃고, 상처 받고, 화도 내며,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렴.


무슨 자기 계발서 같은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사실 그런 생각이 들어. 18살 학생들이 이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완벽히 실천한다면 그 또한 재미없을 것 같네.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렴. 즐거운 일상에 많이 웃고, 때때로 상처 받고, 왠지 모를 화도 내고, 하지만 열심히 시간을 채워가렴.


너희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야. 더 많이 소통하고 싶었고, 더 많이 응원해주고 싶었어. 내 나름의 최선이 너희에게 부족하지는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뿐이구나.  너희에게 준 나의 열정보다 더 많이 선생님을 잘 따라준 너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인 너희들을 오래도록 기억할게.




2015년 성북동 홍대부고에서 교생을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 써주었던 편지다. 교생실습을 마지막 하루 남겨놓은 밤. 헤어질 2학년 3반 28명 학생들의 선물을 준비하고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제법 아쉽고, 서운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마음속 한편 미안함이 남았다. 그리고 고2 마지막 담임 교생이 남교생이어서 실망했던 아이들에게, 다 큰 성인의 몸으로 아이의 미소로 개구지게 웃는 아이들에게, 그러나 한 명씩 불러 개인 면담할 때면 수줍은 소년이 되었던 아이들에게 좋은 교생 선생님으로 남기를 바랐다.

교실 뒤편에 게시해두었던 편지는 감사하게도 선생님들 눈에 띄어 그 해 학교 교지에 실렸다. 26살 어린 대학생이 인생에 대해 논한 글이 선생님들 눈에는 어찌나 귀여웠을까 싶다. 그래도 동생 같던 학생들에게 꾹꾹 눌러 적은 진심 어린 편지는 수년이 지나 다시 읽어도 감동을 준다. 잘 지내니,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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