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서울시 마포구, 어설프지만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딛던 나에게
" 저놈도 맨날 웃고 있어서 그렇지. 가만히 있으면 눈에 독기가 있어."
- 사랑하는 우리 외할머니
근래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새롭게 마주한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나민수의 외적 특징은 '눈웃음'입니다. 혹자는 보기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눈웃음치고 다니지 말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나 싫은 소리보다는 인상 좋다며 칭찬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계속 웃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의식적으로 눈웃음을 짓고 다니지는 않았었는데, 그냥 이제는 사람을 볼 때 먼저 웃으며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해져 버렸네요. 언제부터 나는 이런 눈웃음을 짓게 된 것일까.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듯합니다.
저는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보편적인 마음이 있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이데올로기 수준의 의미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광의의 이데올로기는 어떠한 종류의 행동지향적 이론이나 관념 체계라고 보았을 때,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는 착한 사람을 이상향으로 보고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왜, 착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스스로를 돌아보며 답을 구해봤습니다.
한 사람의 성격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표현할 강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경험과 사건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상대적으로 많은 손윗사람들을 만나는 환경에 살아왔습니다.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친척 중 가장 막내였고, 상대적으로 친구들보다 손윗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익숙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래도 연장자들과 지낼 때에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형님, 누나”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것이겠지요. 이런 환경적인 특징이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는 고등학교에서 왕따를 겪었습니다.
아, 이 한마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그리고 이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으실까요?
250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 격주로만 집에 갈 수 있었던 외국어고등학교에서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어려움이었는지 모릅니다. 4인 1실 기숙사 학교에서 왕따는 24시간 벗어날 공간이 없었습니다. 육체적 괴롭힘은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은 저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수능 50일 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저에게는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소화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풀리지 않는 답답한 마음으로 독서실에 남아 모의고사를 풀며 수능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달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당신들도 어렸습니다. 우리 모두 실수가 있었고, 부족함이 있었고, 잘못됨이 있었습니다.
이는 저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에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누군가를 대할 때 항상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슬픈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21살이라는 나이가 된 지금은 좀 더 여유가 생기고, 많이 강박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새롭게 만난 친구, 대학 동기, 선배들과의 많은 관계들이 저를 점차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데올로기는 타파되어야 하는 것처럼, 언젠가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나를 억압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눈웃음을 짓게 되는 건 아마도 나를 좋게 봐달라고. 미워하지 말라고. 그렇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그런 나만의 눈웃음입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절대 눈웃음치고 다니는 나쁜 녀석이 아니랍니다. 특히나 바람둥이는 더더욱 아니고요. 끌끌.
- 2010년 3월 / 21살의 서울시 마포구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2010년 3월 어느 날, 나는 대학 선후배 대면식에서 여느 날처럼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몇 차례 테이블이 돌았고, 그날 처음 만난 선배가 '넌 눈웃음치는 게 바람둥이 같아'라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 말이 방아쇠였을까. 얼큰하게 취한 채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단번에 이 글을 썼고, 무려 수많은 '일촌'들이 보는 싸이월드에 올렸버렸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점에서 마주한 새로운 사람들에게 어설프고 투박하지만, 용기를 내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다음 날부터 이불킥을 하며 글을 지울지 말지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배려심 넘치는 주변 사람들은 따듯하게 응원을 해주거나 무던하게 이 글을 지나쳐줬다.
최근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서 제작한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를 보며, 오랜만에 힘들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친구들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저 그 질문이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졌을 뿐이다.
외려 지금은 이 글을 다시 읽으면 당시 철학책에 심취해 이데올로기의 정의를 써놓은 점이나, 오글거리는 싸이월드 문체가 좀 많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을 때면 마치 서툴고 불안한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난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다시 올리는 건 그 시절의 나를 꼭 안아서 천천히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과 같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