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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Nov 11. 2016

상처 입는 거리

뜻하지 않게 뒷모습을 들킬 때가 있다

오랫동안 남아있는 말이 있다.

내 마음 한구석에 들어와 박혀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어느새 굳은살이 돼 버린.

아직도 욱신거리는 말이 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회사 동료는 어느 날엔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내 뒷모습을 보면 엄마가 된 거 같다고.

처음엔 무슨 소리지 싶었다.


"불안해. 되게 불안해 보여."

뒤이은 말은 이거였고

"저... 괜찮은데..." 

순간 당황했지만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이렇게 넘겼던 거 같다.



날 지켜보고 걱정해 주는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묘하게 사람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대체 무얼 보고 나를 판단하는 건지.

하필이면 얼굴도 아닌

표정도 알 수 없는 뒷모습을 가지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불안해 보인다는 그 말이

이토록 오래 머문 이유를

나는 몇 해의 겨울을 보내고서 알게 됐다.

아마도 그가 상처 입는 거리에 서있었던 사람인 까닭이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개인적인 기분이나 감정은 알 길이 없는.


점심을 함께 하지만

직장을 벗어난 곳에선 마주치지 않는.


지인이라 칭하기에도 어색한 

적당히 걸러진 서로의 모습을 공유하는 사이.


하지만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진실일런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워서 나의 단점을

보지 못하거나

존재를 무시할 정도로 떨어진 거리가 아닌

'아는 사람'의 거리.


그 거리에서 하는 말들은

사려 깊지도 무신경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신문을 읽듯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끄집어낸다.



또 다른 이유 한 가지는 

뒷모습에 있다.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이라는 산문집에서 말했다.


" 등(背)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하지만 등은,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뒷모습은 인간의 진실을 웅변적으로 표현한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하고

입가에 난 뾰루지를 화장으로 가리며 

앞모습의 얼굴은 최선의 위장을 한다.


하지만

감출 수도 없고

감춘다고 감춰지지도 않는 

도무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뒷모습은

'내 마음' 그 자체일지 모른다.


내가 볼 수 없는 내 모습

나만 볼 수 없는 내 모습은

고스란히 내 뒷면에 

솔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뒷모습의 실체를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 읽히고 만다.


빙하에 앉아있듯

잔뜩 웅크리고

모니터를 보던 나를

갈피를 못 잡고 진땀을 흘리던 나를 

그래서 그는 알아봤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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