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위로하는데 詩가 도움이 되는 이유.
며칠… 지인 몇몇의 '부음訃音'을 접하고 마음이 어두워졌다. 늘 죽음은 생경하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시를 읽는다.
1. 시詩의 서양적 관점(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중심으로)
서양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절에는 예술이라는 말도 없었고, 문학이라는 말도 역시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문학과 예술이 꽃을 피웠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시학』(페리 포이에티케스Περὶ ποιητικῆς)에서 ‘시詩poiesis’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그리스어 ‘포이에티케’(ποιητική)’는 직역하면 ‘만들어낸 것, 창작물’이다. 즉 ‘시’는 인간이 창작해 낸 대부분의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시학』이라는 책 이름 ‘페리 포이에티케스’ 도 직역하면 ‘창작물에 관하여’이지만 후대 사람들이 『시학』 또는 ‘시론’으로 옮겼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창작물의 범주(즉 詩적 범주) 안에 ‘서정시’와 ‘서사시’ 나아가 ‘비극’과 ‘희극’조차도 포함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창작의 바탕에 ‘미메시스’와 ‘뮈토스’가 있다고 보았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예술이란 ‘미메시스’이면서 ‘뮈토스’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메시스 mimesis’는 전통적으로 ‘모방 imitation’으로 번역되어 왔는데, 요즘 인정되는 이야기는 ‘재현 representation’으로 번역해야 더 적확的確하다는 주장도 있다. ‘뮈토스 mythos’는 ‘이야기’ 또는 그 ‘이야기의 배열’이나 ‘줄거리’ 등의 의미로 번역되는데, 영어로는 ‘fable(이야기, 우화)’로 번역되다가 최근에는 ‘plot(구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로 본다면 이야기 쪽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서에 와닿는 우리 이야기는 대부분 구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학』에서는 자주 ‘뮈토스’와 ‘詩’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화’와 ‘조각’은 ‘시 poiesis’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이유는 ‘회화’와 ‘조각’에는 이 ‘뮈토스’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이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디튀람보스dithyrambos’ 즉 ‘디오니소스 찬가’는 시에 포함시켰다. (디오니소스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아리스토텔레스 당시의 ‘시 poiesis’적인 상황을 ‘언어’와 ‘선율’과 ‘리듬’(통상 음악)이 아우러졌을 때라고 이야기했다. 『시학』의 ‘포이에시스 poiesis’는 ‘making’의 의미가 있다. 즉 당시의 ‘시’는 목적을 가지며 인간의 기술이 적용된 보편타당한 어떤 대상을 의미했다. 『시학』에 따르면, ‘시’는 ‘미메시스’의 형태로써 그 수단은 ‘선율’과 ‘리듬’ 그리고 ‘언어’라는 것이다. 동시에 ‘미메시스’의 대상은 인간의 행동이고, ‘미메시스’의 방식은 '뮈토스’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는 ‘춤’으로 변용되기도 하고 음악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리고 좋은 ‘시’는 언제나 ‘연민’과 ‘사랑’, 그리고 깊은 '슬픔'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시학』, 아리스토텔레스,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39쪽 이하 참조)
2. 시의 동양적 관점('한시'와 사공 도의 『시품詩品』을 중심으로)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詩의 뜻은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감흥이란 또 무엇인가? 감흥이란 마음속 깊이 감동받아 일어나는 흥취라고 되어 있는데 흥과 취미가 합해진 흥취를 느끼는 것이 감흥이라고 했다.
따라서 결국 詩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재미나 즐거움, 그리고 슬픔 따위(대상의 유무와 관계없이)를 율律, 즉 정해진 방식대로 압축해서 옮겨 놓은 글을 말하는데 아무나 詩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흥은 누구나 느끼지만 그 흥을 법칙에 맞춰 글로 옮기는 것은 대단한 훈련과 지식, 그리고 창의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온 漢詩는 그 법칙이 매우 엄격하여 누구나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인간의 '흥'과 '취'를 넘는 내면의 풍경과 심지어 득도의 경지까지도 담아내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매우 높은 경지의 것들이었다.
이런 漢詩(이하 詩)는 출세의 유일한 길이었고(과거의 중요한 과목 중 하나가 詩다.) 그 사람의 지식의 깊이와 미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 방법이 詩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제가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된다.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것은 모두 詩다.”
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의 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양의 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의 구조적 범위에서 벗어나 그 시를 짓는 시인의 심상에 더 집중했다.
한시에서 이러한 시인의 심상을 24개로 분류하여 각각의 심상을 다시 시로 표현한 것이 있다. 사공도(司空圖, 837-908)는 만당晩唐의 시인이다. 그가 지은 『시품詩品』은 당시까지 지어졌던 한시를 스스로 정한 24개의 필터로 해석하여 다시 4언 12구, 전체 288구句의 시로 표현하였다. 『시품詩品』을 통해 우리는 동양에서 시가 가지는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즉 24개의 풍격風格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망라網羅한 것이다.
24시 품은 1. 웅혼雄渾 2. 충담沖澹 3. 섬농纖穠 4. 침착沈着 5. 고고高古 6. 전아典雅 7. 세련洗鍊 8. 경건勁健 9. 기려綺麗 10. 자연自然 11. 호방豪放 12. 함축含蓄 13. 정신精神 14. 진밀縝密 15. 소야疏野 16. 청기淸奇 17. 위곡委曲 18. 실경實景 19. 비개悲慨 20. 형용形容 21. 초예超詣 22. 표일飄逸 23. 광달曠達 24. 유동流動을 말한다.
사공 도의 24시 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미메시스’ 즉 ‘재현 representation’이 각각의 시인에 따라 그 해석과 장면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늘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하지만 몇 편의 시를 읽으며 내 존재의 유한함, 동시에 반드시 종결될 것이라는 분명한 한계성을 자각하는 일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데 꽤나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든 완벽한 종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