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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7. 2024

호칭에 대한 짧은 생각

호칭에 대한 짧은 생각


2019년 9월 1일자로 공모 교장이 되었을 때, 그 즉시 깍듯하게 나에게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우 어색했다.


그런가 하면 2020년이 되어도 2021년이 되어도 나에게 그저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잠시 머뭇거리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지상정이라 생각했다.


2019년 9월 이후 다시 교사로 돌아온 2023년 9월까지 4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 교장이라는 전체 집합에 속하지 않는 단지 4년 동안만 교사로서 교장 역할을 수행하는 진부분 집합으로 지냈다.  


그런데 4년 동안 일단 호칭은 교장 선생님으로 불렸다. 하지만 나는 자주 지인들에게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청했고 일부는 응해주었으며 또 일부는 여전히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2023년 9월 1일 교사로 돌아왔다. 본래 나의 자리였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히 돌아왔음에도 여러 가지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2019년 9월 1일부터 나를 깍듯하게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2023년 9월 1일 이후로 역시 매우 정확하게 ‘선생님’이라고 나를 불렀다. 


그런가 하면 2020년이 되어도 2021년이 되어도 나에게 그저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잠시 머뭇거리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2024년 지금도 가끔은 교장이라 부르고 또 가끔은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는 변함없지만 외부의 상황에 따라 호칭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나를 부르는 상대의 태도와 민감도다. 


상황에 따라 호칭을 달리해주는 배려와 호의, 그리고 그 정확성에 감탄하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 대한 호칭에 혼선을 빚는 사람들에게 정이 가는 것 역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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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문제를 며칠 깊이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문득!


거기에는 나의 욕망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장자』 제물론에 〈세속적인 인간은〉 잠들어서도 꿈을 꾸어 마음이 쉴 사이가 없고, 깨어나서는 신체가 外界의 욕망을 받아들여 사물과 접촉해서 분쟁을 일으켜 날마다 마음속에서 싸운다.라고 했다.


또 『장자』 경상초에 ‘莊子’가 楚나라로 가다가 속이 빈 해골이 앙상하게 마른 채 모양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장자莊子’는 말채찍으로 그 해골을 치면서 질문했다. “그대는 과도하게 生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道理를 잃어서 이 지경이 된 것인가?”라고 했다.


이 두 가지 욕망이 곧 내 욕망과 비슷한 것이었음을 희미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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