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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4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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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22. 2024

混淖之世適時開柰花與歲月去矣

混淖之世適時開柰花與歲月去矣(혼뇨지세적시개내화여세월거의)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사과 꽃은 제 때에 피니 더불어 세월이 흐르고 있음이라.


定時閉其門*(정시폐기문) 문 닫을 때가 정해지니,

厖雜中不動 (방잡중부동) 혼란스러워도 움직임 없구나. 

寬明乃隱暗 (관명내은암) 희미한 밝음은 곧 어둑할지니,

至道無揀調*(지도무간조) 도에 이르니 구별 없어라.


2024년 4월 22일 오전. 우연히 2019년에 촬영했던 사과 꽃 사진을 보며 생각을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20자를 뭉쳤다. 꽃 피는 장면을 보고 문을 닫는다는 것은 현상에 매이지 않고, 시간을 관통하여 꽃의 시작과 결과를 동시에 보고자 함이며, 꽃의 아름다움을 혼란함에 비유한 것은 역시 인간의 감각기관이 가질 수 있는 오류를 말하려 함이다. 결국 밝음과 어둠조차도 도의 관점에서는 차이가 없음이다. 긴 제목은 지금, 2024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 도덕경 52 장 노자가 “구멍을 닫고 문을 닫으라 “塞其兌, 閉其門”고 한 것은,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과 의식이 분출하는 감각기관을 틀어막으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제한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좁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와 정보는 한정되어 있으며, 입으로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눈과 귀와 입은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귀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며, 입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려 한다. 결국 감각기관은 우리의 인식을 왜곡하고 제한할 위험성이 있다. 하여 용사 하였다.


* 중국 선종禪宗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璨이 지은 신심명信心銘에서 “지도무난 유혐간택 至道無難 唯嫌揀擇” 즉 “도에 이르는 일은 어려움이 없다. 오직 분별하고 선택하는 마음을 싫어하는 것이다.” 즉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깨달음의 경지는 분명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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