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다시보기
오전 8시 반까지 신촌에 가야하는데. 정확히 8시에 눈이 딱 떠졌다. 어젯밤 자기 전에 입을 옷이라도 미리 정해놔서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허겁지겁 입고. 화장실에 가 눈꼽 정도만 뗐다. 지갑, 이어폰, 핸드폰 등을 챙겨 오분만에 집을 뛰쳐나왔다. 마을버스를 타러가는 길. 손에있는 짐을 정리하려는데, 손이 입고있던 치마를 그냥 쭉 미끄러져 내려간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 맞다.. 이 치마에는 ‘주머니’가 없다.
심지어 오늘 비도 내렸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쪽 어깨엔 배낭을 메고, 또다른 손으론 핸드폰과 이어폰 그리고 지갑을 움켜쥐었다. 원래는 주머니에 들어가야 할 물건들이다. 이미 정신 없는 정신이,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로 더 정신이 없어졌다. 단지 주머니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나 달라지다니. 주머니의 부재를 통해 새삼 주머니라는 존재의 감사함을 느꼈다.
주머니엔 보통 자주 꺼내야하는 물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지갑, 핸드폰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갑과 핸드폰을 꺼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럴때 주머니는 가방보다 요긴하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카드를 찍어야하는 긴박한 순간. 가방을 열고 지갑을 찾고 있으면 뒷통수가 따가워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주머니는 재빠르게 물건을 꺼낼 수 있게 도와주는 무엇이다. 물품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가방과 유사하지만, 속도에서 차이를 준다.
무엇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으면 마치 내가 매우 쿨한 사람처럼 보여 기분이 좋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선선하지도, 그렇다고 덥지도 않은 날씨에 쓰레빠를 신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훌훌 돌아다니는 걸 좋아라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평소에 굽어 있던 어깨와 가슴도 자연스레 펴진다. 몸이 당당해지니 마음도 그에 따라 당당해지는 것 같다.
여기까지만 봐도 주머니의 존재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주머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끔은 주인을 위해 부업까지 한다. 오랜만에 장롱속에 있던 옷을 꺼내입다보면 가끔 주머니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기도 한다. 과거의 내가 넣어뒀던 만원짜리 지폐 한장. 혹은 친구에게서 받은 명함. 혹은 내가 자주 애용하던 립밤. 그리고 반지 하나. 그럴때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긴 시간을 뛰어넘어 조우한 느낌이다. 그럴때면 기분좋은 마음으로 물건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선다. 이처럼 주머니에서 다시 발견된 물건은 무료한 일상에 작은 이벤트를 선사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주머니가 있는 옷을 좋아하고.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을 때면, 옷을 디자인한 사람에게 ‘어떻게 주머니가 없는 옷을 만들수가 있죠?’라고 반문하고 싶은 순간이 종종 생긴다. 주머니가 없는 옷은 세상에서 퇴출되어야 된다는 급진론을 펼치고 싶은 순간도 가끔 온다.
P.S 립밤은 내 기억 속에서 잊힌 채 깜깜한 주머니 속에서 한 계절을 보냈다. 립밤에게 그 시간은 나로부터 벗어난 해방의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어서 빨리 발견되길 바라는 초조함의 시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