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달 Apr 20. 2022

이름도 귀여운 돌돌이가 내 삶에 들어왔다

 물건 다시보기

  노자(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를 키우고, 내 삶은 노자를 중심으로 다시 재편됐다. 노자가 미끄러지지 않게 바닥에 카페트를 깔았고. 가구배치도 내가 아니라 노자의 동선을 고려했다. 무엇보다 이전과 달리 돌돌이라는 물건을 사용하게 됐다. 노자의 털은 공중에도 떠다니고, 바닥에도 굴러다니고, 이불에도 붙어 있었다. 이렇게 털이 많이 빠지는데, 여전히 노자는 풍성한 털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였다.


  사실 나는 더러움에 내성이 강한 편이다. 안씻고 최대 7일을 버텨본적 있다. 그런 나도 미친듯이 보이는 노자털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보다. 결벽증이 생길지경이었다. 하얀 이불에 붙어있는 털은 보고만 있어도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귀찮아서 양치도 안하고 누워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다용도실에서 돌돌이를 가져왔다. 곳곳을 돌돌거렸다. 이불뿐만 아니다. 틈만 나는 바닥도 돌돌돌, 옷도 돌돌돌, 가방도 돌돌돌. 책상 위도 돌돌돌. 돌돌이로 이곳저곳 붙어있는 노자 털을 제거했다.


  돌돌이는 그렇게 내 인생에 들어왔다. 청소에 크나큰 관심이 없던 나였다. 처음엔 청소기로 대충 털을 제거했다. 하지만 다이슨의 미친 흡입력으로 청소를 하다보면 빨려들어오지 않는게 없었다. 카페트도 이곳저곳 들리고. 이불 커버도 딸려들어왔다. 허나 돌돌이는 아니었다. 돌돌이는 돌돌돌하는 대상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겉면에 있는 먼지들만 깨끗하게 싹 제거해준다. 이불도 그대로. 카페트도 그대로. 대신 그 이전보다 깨끗해진 모습으로.


  무엇보다 심플하다. 청소기는 한손으로 들기도 무겁고,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도 해야한다. 먼지통이 차면 비우고 세척도 해줘야한다. 하지만 돌돌이는 한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이며, 그저 나는 접착 종이를 한 장씩 주욱주욱 뜯어 쓰면 된다. 이제 나는 청소기는 잘 안 돌린다. 맨날 돌돌이만 한다. 게으른 나에게 안성맞춤의 청소도구인게다.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나를 위해서 였겠지만(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어떤 조언은 다이슨 청소기처럼 나라는 형태까지 망가트렸다. '정말 나는 살만 빼면 괜찮을까?' '나는 우울하게 생겼나?' 이런 생각에 나를 무리하게 바꾸려다가 결국 내 자신을 잃기도 했었다. 돌돌이를 보며 생각한다. 돌돌이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나의 모양을 크게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쌓인 먼지를 깔끔하게 제거해주는. 그런 돌돌이말이다. 


  문득 내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돌돌이었을까? 아님 다이슨 청소기였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