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달 Apr 20. 2022

박새도 참새도 까치도 아닌 소쩍새처럼

일상 끄적임

이사온 집의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내 방이다. 단순히 내 소유의 공간이라 마음에 드는 것만은 아니다. 소나무 숲과 마주하고 있어서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도 나무는 보였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인위적으로 심어둔 가로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숲이 보인다. 숲엔 나무만 있지 않다. 가끔은 꿩이 꿩!꿩!하고 울고. 먹이를 찾는 청솔모가 나무 위를 분주히 돌아다니다 방에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곤 고장나기도. 먹이를 찾는 들개 가족을 보기도 한다. 


숲과 일상을 함께하게 되며 느낀점이 하나 있다. 숲의 밤은 낮과 달리 매우 조용하다는 것이다. 이전엔 주로 등산을 하러 숲을 갔다. 그러다보니 밝은 숲의 모습만 주로 봤다. 이렇게 밤까지 숲과 함께 하게 된 건 이 집에 오고나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아침엔 새도 지저귀도, 조그만 야생동물들이 부스럭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밤에는 아니다.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사방천지가 어둡다. 나는 그런 어둠에 익숙하지 않다. 보고 있으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갑자기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어둠이었다. 나는 오히려 밤에 커튼을 내리고 잤다. 숲이 보이지 않게. 숲의 밤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어제부터 밤의 숲에서 휘파람 소리같은 게 규칙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소쩍새 소리라고 알려줬다. 소쩍새는 나에게 밤에도 숲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줬다. 커튼을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소쩍새 소리에 귀를 더 기울였다.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리는 밝은 숲과 달리, 밤의 숲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소쩍새 소리 뿐이었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울음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글을 쓰고있던 연필을 내려놨다. 연필이 종이와 부딪치며 내는 소리마저도, 그 순간엔 커다란 방해였다. 


지금도 소쩍새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글을 쓴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소쩍새가 떠날날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나는 원래 뭐든 금사빠이긴 하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소쩍새에게 매료된 것일까? 산까치부터 박새, 그리고 참새까지. 새들은 낮에도 충분히 많이 보는데 말이다. 소쩍새는 다른 새와 달리 야행성이라 밤에 혼자 운다. 무엇보다 몇 번 울고 마는 부산스러운 낮의 새들과는 달리, 소쩍새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운다. 조용해진 바깥을 보며 이제 소쩍새가 그만 우려나 생각했다. 괜히 슬퍼질려 할때 그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내가 깊은 잠에 들때까지도 계속 울었다.


소쩍새는 자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른 새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운다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행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에서 아름답게 그리고 꾸준히 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쩍새에게 유독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에, 아무도 듣지 못 할지라도, 계속 울고 있는 소쩍새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나도 그처럼 살아야지하는 마음이 드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도 귀여운 돌돌이가 내 삶에 들어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