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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pr 09. 2024

나는 나쁜 마음을 먹고 팀원을 배려했다

나는 지독히 극단적인 T형 인간이다

나는 지독히 극단적인 T형 인간이다


내가 MBTI를 처음 접한 것은 대략 십수년 전쯤이다. 그때는 이렇게 MBTI가 대유행을 펼치던 시대가 아니었고, 쉬운 인터넷 테스트가 넘쳐나던 시기도 아니었다. 처음 테스트를 했던 것은 학교 상담실이다. 그냥 돈 좀 비싼 테스트를 그냥 해준다고 해서 시간도 남고 해서 테스트를 봤다. 문항은 엄청나게 많았고 시간도 꽤 걸렸다. 


결과는 INTJ. 대략 납득할 수 있었다. 두 가지는 중간에서 조금 넘어간 수치였고 두 가지는 극단적이었다. 어중간한 수치 둘은 N과 J. 사실 나는 썩 부지런하지도 않고 계획형 인간도 아니다. 다만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을 싫어할 뿐이다. MBTI가 범람하는 요새도 말한다. J는 부지런한 인간들이 아니라 돌발상황을 싫어하는 인간들이라고. 



극단적으로 나왔던 것 둘은 I와 T이다. (I에 대하여는 이 글을 참조). 나는 음악을 만들어본 사람이지만 감성이 풍부한 게 아니다. 나는 주위에 음악을 수학이라고 했다. 수학적 배열을 잘 하면 코드가 나오고 화성이 나온다. 기술적으로 가면 더 복잡하다. 어느 주파수를 강조하기 위해 EQ를 넣어주고 컴프레서니 리미터니 등의 이펙터를 잘 계산하여 넣어준다. 이처럼 수학적인 것이 어디있나. 


어느 날 팀원들이 내 MBTI를 물었다. 내가 테스트한 그대로 설명했다. 직원들은 의아해 했다. 


"F가 아니라 T라고요?" 
"네 저 극단적인 T에요" 


직원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내가 왜 앞에서 '내가 십수년 전 MBTI를 했다'고 이야기했냐면, 요새의 테스트는 좀더 가볍고, 좀 더 범주화 돼 있다. 이를테면 쇼츠를 보면 'T형 인간'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곧이 곧대로 말하는 약간의 무례한 인간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다. 입사 하고나서부터 한결같이 팀원들에게 존칭을 썼다. 흔히 말하는 '반존대(EX-이거 빨리 해요, 정신 차리고 안해요? 같은)'도 쓰지 않는다. 묻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했다. '배려'를 받으니 'F' 일 것이라고 오해 한 것



나는 고민 끝에 친절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친절하게 구는 이유는, 결론부터 말하면 '더욱 확실히 일을 시켜먹기 위해서'다. T형 인간이기에 사람들을 계량화 해서 본다. 저 사람의 업무 성과는 어떻고, 하루에 칠 수 있는 일은 어떻고 하는 것들. 내가 말을 조금만 더 예쁘게 하면 저 사람은 불필요한 스트레스 없이 일 할 수 있다. 내가 조금 더 확실히 설명하면 저 사람은 나에게 두번 묻지 않고 바로 일에 임할 수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그런건 사실 별로 안중에 없다. 극한의 효율을 이끌기 위해 정립된 내 방법론만이 있을 뿐이다.


회사생활 하면서 참 많이 봤다. 관리자의 스트레스까지 일종의 업무로 돌아오는 형태를. 나는 직장생활 초기에 참 많이 술을 먹었다. 온갖 스트레스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해소가 되나? 다음날 더 피곤할 뿐이다. 각오로 버티는 게 반년 쯤은 가능하다. 그 이후는? 퍼진다. 번아웃이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지만 그걸 가속시키는 요인들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런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실, 한 겹 더 들어가면 한국에서의 회사집단은 워낙 불친절하고 하방압력을 심하게 가하는 방향으로 돼 있다. 그것만 하지 않아도 조직원들에게는 일종의 리워드가 간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성비 좋은 리워드를 포기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팀원들에게 주기적으로 '우리가 거래관계에 있음'을 말한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노력을 다 할테니 당신들도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주 합리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 거래다. 



말의 비용은 싸나, 효과는 크다. 


나는 매우 계산적인 사람이다. 불필요한 소모를 싫어한다. 말 한마디 싸가지있게 하는데 큰 돈 들어가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남들 입장에 서서 하면 신뢰관계 형성에 도움이 된다. 이따금 '서양식 직설적 말하기'와 '동양식 돌려 말하기'를 비교하여 서양의 것이 더 효율적이며 위대하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장 (드라마같은데서 표현된) 조조만 봐도 그렇지 않다. 머릿속엔 온통 이문만 가득찬 인간이라 최대한 그의 구미를 맞추어 말을 듣는 대상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만든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를 F라 생각하든,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든 어찌 생각하든 상관 없다. 그들이 일 하는데 스트레스가 적고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려고 마음먹는 그 '결과'만 있으면 된다. 고작 그 말 하는 방식 몇개만 고쳐서 그정도 성과를 얻는 것이다. 얼마나 효율적인가. 


*시간이 뜨는 어느 점심시간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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