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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pr 16. 2017

내향적 인간에 대한 오해 (1)

“제가 내향적 인간이라서요. 낯가림도 심하고 그래요.”


어느 날 모임에 나갔다. 실컷 시끄럽게 떠들고 분위기를 주도한 A는 모임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제가 내향적 인간이라서요. 낯가림도 심하고 그래요.”     


실컷 재밌게 놀아놓고, 심지어는 말도 제일 많이 해놓고, 목소리도 제일 커놓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혹시 그가 마지막까지 ‘유우머 포인트’를 던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남긴 이는 실제 그럴 확률이 높다.     


나는 심할 정도로 내향적 인간이다. 이게 학술적인 정의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다만 내 나름의 잣대에서는 그렇다. ‘내향적 인간이면 말수도 적고 쑥스러워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그게 항상 답은 아니다. 내향적 인간은 내성적 인간과는 분류가 약간 다르다. 둘의 차이는 말수나 대인관계의 스킬 같은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내 나름의 잣대에 의하면 에너지를 어디서 얻고 어디서 쏟느냐다.     


     

그래서 내향적 인간이 뭔데?     


간단하게 말하면 관계, 인간과의 만남이 에너지의 소비인 사람들이다. 소비란 게 말 그대로의 소비다. 딱히 부정적으로 ‘당신은 나를 소모해’라고 해석하지 않아도 좋다. 왜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운동을 하면 에너지를 쏟지 않는가? 그 정도의 의미다.     


http://dongan.dau.ac.kr


사람을 만나면 상대에 대해 신경을 쓴다. 상대의 기분에 신경을 쓰고 고민에 신경을 쓴다. 대화도 보통 그냥 잘 안넘긴다. 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런 부류의 인간한테 “오늘 직장 상사 때문에 짜증나”라고 이야기하면 곧바로 당신이 며칠 전에 직장 상사에게 험담을 했던 페이스북 포스팅, 그리고 당신이 예전에 흘리며 말했던 당신 직장의 분위기 같은 걸 머릿속에 로드 한다. 당신과의 대화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다. 그리고 보통은 예민한 사람들이다. 내 고민 같은 것도 잘 털어놓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 다는 건 앞서의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나? 그건 또 아니다. 나는 가끔 “대인관계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고 느낀다. 그걸 한동안 안 쓰는 경우 좀이 쑤시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 한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게 ‘에너지를 쏟는 행위’이고 그래서 이 에너지가 축나면 그때부터는 지치기 시작한다.     


지치기 시작하면 집에 틀어박힌다. 한동안 연락을 끊는다. 원래 먼저 연락도 잘 안하는 데다가 오는 약속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에너지가 회복될 때까지. 이런 식의 행동을 몇 번 벌이다보면 사람들은 오해한다.      

“얘가 나를 싫어하나?”     


사실 이런 이야기도 스트레스다. 집에 있어야 할 시간만을 더 늘여준다. 나 당신 좋아한다. 내가 에너지 회복되면 당신 제일 먼저 만날 거다. 다만 지금은 우리 부모님이 보자 해도 안볼 거라고. 힘들다고.      


여튼 이런 부류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말도 없고 모임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면서도 한 번도 모임에 빠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종류의 사람. 다만 그 사람이 대인관계에 대한 스킬이 적거나 내성적일 수 있는 사람이다.          



내향적내성적둘이 다른 거야?     


내향적이라는 말을 잔뜩 하더니 갑자기 또 내성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바로 그 내성적인 사람이다. 내 기준에서 내성적인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가깝다.     


친구들은 종종 나를 ‘에뛰드 하우스’에 집어넣겠다고 겁을 준다. 나는 그 분홍분홍하며 과잉 친절이 가게 곳곳에 서려있는 그곳이 두렵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심하게 의식하는 편이며 내가 무슨 일을 하든 튀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나는 이게 ‘내성적’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취향에 따라 물건으로 고르는 가게에서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이런 건 보통 인터넷으로 산다. 나는 타인에게 내 취향을 이야기하며 선택을 부탁하는 일이 쉽지 않다. 쑥스럽다. 예를 들어 옷을 살 때나 화장품을 고를 때, 누군가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고 답을 요구하는 과정이 정말이지 싫다.      



옛날에는 밥도 혼자 잘 못먹었다. 지금도 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니면 길거리를 걸으며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나는 가끔 노래를 부르며 길거리를 걷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하면서도 집밖에서는 과한 애정표현을 잘 못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낯선 사람과 대화를 잘 못하기도 한다. 전화보다 문자 대화를 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사회가 워낙 대인관계를 종용하다 보니 스킬을 익히고 연습을 해서 그나마 혼자 잘 먹고, 낯선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도 적당히 할 수 있는 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많이 내향적이며 적당히 내성적인 사람이다. 집 안에서 홀로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채우며,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는 인간이다.          



오늘은 어떤 가면을 쓸까?     


나는 모임을 네 가지 정도로 분류한다. 이 분류는 상황이나 환경보다는 그 모임의 구성원에 따라 갈린다.      


1. 완전 친한 사람들과의 모임
2. 몇 번 봤지만 친해지기 요원한 사람과의 모임
3. 친한 사람과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섞여있는 모임
4. 한 번도 안 본 사람 여럿과 만나야 하는 모임     


경험상 제일 어려운 모임은 4번, 그다음은 2번이다. 내가 제일 활달해 지는 모임은 1번이 아닌 3번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3번의 경우는 작정하고 가면을 쓰고 나간다. 보통은 저런 모임을 잘 참여하지 않지만 일단 참여하기로 하면 그날은 작정한 날이다. 나는 원래 쑥스러움이 많고 낯가림이 심하지만 사회가 요구함에 따라 인간관계에서의 기술들을 어느 정도 습득한 상태다. 적당한 템포의 말, 집중을 할 만큼은 높지만 너무 경박스럽지는 않을 정도의 목소리 톤, 그리고 상대와 접점을 찾을 수 있을만한 주제들의 고민.     


이거 진짜 열심히 연습한 결과다. 이런 모임에서는 정말 ‘두뇌 풀가동’을 한다. 술을 먹어도 쉽게 취하지 않을 만큼. 상대의 대화 패턴을 캐치하고 성격을 파악한다. 머릿속에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장 최선의 결과를 내뱉는다. (물론 그 판단이 항상 옳다는 건 아니다) 이따금 모임 전체에서 주목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자리를 굳이 옮기진 않는다. 누군가가 근처에 앉으면 또 머리를 굴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저녁 일곱시부터 열한시까지 두세번의 술자리를 이어간다. 파김치가 된다. 집으로 가면서 생각한다.     


‘당분간 사람 만나지 말아야겠다.’     


요지는 이거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날 때 에너지를 쓴다. 당신과 시시콜콜 웃으며 대화한 이유는 결코 그게 내가 편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상대는 ‘저 사람 되게 유쾌하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 적당히 일을 하고 왔다. 그런 날 이유 며칠 동안은 당분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4번의 모임 같은 경우는 차마 그렇게 에너지를 쓸 엄두도 안 난다. 여기서부터는 ‘내향적인 것’보다 ‘내성적인 것’에 관련이 있다. 본디 쑥스러움이 많은 데, 그걸 달래주고 편안하게 해줄 사람조차 없는 경우. 그때부턴 그냥 쭈구리가 된다. 말도 잘 안하고 거의 시키는 말만 대답한다. 원래 섣불리 다가가 아는 척 못한다. 대화의 기회를 굳이 만들기엔 너무 두렵다. 그래서 4번의 모임이 제일 두렵다.     


그렇다면 왜 1번의 모임보다 3번의 모임에서 더 말이 많은가? 1번의 모임은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들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아는 경우, 내가 굳이 그 모임에서 연기까지 해가며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다. 이따금 휴대폰도 보고, 이따금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도 한다.      



2번의 모임의 경우는 되게 애매한 데, 적당히 말을 섞긴 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겼지만 단둘이 만나 내 진심을 보이고 내 편한 모습을 보이기 되게 애매한 경우다. 그렇다고 과하게 가면을 쓰자니 그것도 너무 가짜의 모습 같다. 즉 이도 저도 못하는 만남이다. 말수는 적어지고 그렇다고 갑자기 가깝게 친해질 포인트를 찾기도 힘들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일 어려운 관계다.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그냥 적당히 멀어지거나 아니면 사이버 상(카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만 친한 관계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주에는 내향적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벌어지는 일, 내향적인 사람이 사회생활을 할 때 생기는 일, 내향적인 사람이 연애할 때 생기는 일, 이런 종류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기억했으면 좋을 법한 점 등을 적어보겠습니다. 언제까지 연재할 지는 잘 모르겠음.     


그리고 이거 철저히 제 기준의 이야기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이상한 자기 계발서에 나올 이야기 한 챕터 정도라고 생각하시고 대충 가볍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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