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aily Grun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호 Apr 25. 2017

아이유의 가면 혹은 팔레트

아이유의 스물다섯은 아이유의 것이다.

아이유의 스물다섯은 아이유의 것이다. 아이유의 스물 셋이 그랬듯 아이유는 이번에도 자기의 스물다섯을 나눠줄 생각은 여전히 없다. 아이유의 노래는 아이유만의 것이고, 우리는 아이유의 스물다섯을 그저 그가 허락한 만큼만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소유하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소유란 의미가 자기의 삶을 제 의지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삶을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지켜낼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다. 그래서 아이유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어른이었다, 어떤 어른이 ‘웃음을 던지면서, 슬픔을 부딪히며 찬찬찬’이라며 세상의 고통과 설움 다 진 듯 이야기할 때, 스물 다섯의 아이유는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라며 굳이 힘 빼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의미 그놈의 의미,
<잼잼, 아이유>


나의 스물 셋엔, 나의 스물다섯엔 내가 누군지 잘 몰랐다. 나는 누군가의 존재위에 규정됐다. 누군가의 칭찬에 기뻐하고, 비난에 잠을 못 이뤘다. 나의 세계랄 게 없었다. 종종 반짝이는 것을 쫓았고, 쫓던 그것이 빛을 바래면 금방 또 그렇게 싫증을 냈다.


내 것이 없었던 때, 그래서 남의 것을 탐내던 때. 모래성 같은 자아 위에 자존심이랄 것 몇 개만 움켜쥐며 살았던, 불안한 때가 있었다. 말 그대로의 불안이었다. 내가 내뱉는 이야기에 나의 것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만큼 똑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언제든 가짜인 내 것을 들춰내고 흉볼 것 같아 무서웠다. 서른이 조금 넘은 지금, 겨우 내 것들을 찾아서 내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따금 그 때를 떠올리면 ‘참 어렸지’란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겨우 어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덜 자란 아이였다.


스물 셋의 아이유는 그때의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갖고 있었다. 스물 셋 어린 여자애를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공허한 의미일 수 있으며 우리는 때론 사랑받기 위해서 오히려 나를 감춰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진짜배기 나’나 ‘자아를 찾은 나’ 따위가 아니라 그것들을 아주 잘 숨길 수 있는 가면이란 것. 그리고 사랑받는 것이란 곧 살아남음과 다름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진짜’는 결국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일 뿐이란 사실도.



발그레해진 저
두 뺨을 봐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그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제제, 아이유>


그걸 아는 스물 셋 아이유의 배려는 이런 식이다. 진짜 배려는 굳이 당신의 가면 뒤를 들춰보고 나서, 그걸 이해한다는 식으로 표정을 지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들추어보지 않는 것 그 자체다. 내가 당신에게 내 가면 뒤의 모습을 들키기 싫듯, 나도 당신의 가면 뒤 모습을 궁금해 하지 않겠다는 게 아이유식 배려다.


공들여 감춰놓은 약점을
짓궂게 찾아내고 싶진 않아요
그저 적당히 속으면 그만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누구의 흠까지 궁금하지 않아
<안경, 아이유>


사랑도 마찬가지다. 너나 나나 피차 가면을 쓰고 살 텐데, 우리가 사랑한다면 이유로 왜 굳이 적당히 추잡한 가면 속 민낯을 봐야 하냐는 거다. 믿음이란 당신의 가면 뒤 모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당신이 쥐고 있는 바로 그 예쁜 가면을 항상 꺼낼 수 있냐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한다고 해
입에 발린 말을 해 예쁘게
끈적끈적 절여서 보관할게
<잼잼, 아이유>



가면에 지친 사람들은, 꿈처럼 진짜배기를 찾아 헤맨다. 그런 건 사실 없고, 만약 있다고 해도 우리가 서로의 민낯을 보면 상처만 될 뿐이다. 그래서 아이유는 늘 연기한다. 진짜 같은 가짜, 혹은 가짜 같은 진짜를. 뭐든 상관없다. 그 어느 것도 가짜는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중요한 건, 내가 내민 게 진짜인지 여부보다는 이게 진짜라는 자기의 확신일 뿐이고,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기꺼이 달콤한 걸 집어 들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그게 진짜라고 믿는 것 뿐이다.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스물셋, 아이유>


지난 두 개의 앨범을 통해 아이유가 구축한 서사는 그 가면들 사이의 실루엣, 그걸 관음하게 하는 만드는 것이다. 이것저것 보여주고, 뭐가 진짜인지 계속 캐묻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에 다 진짜라고 이야기한다. 이번 앨범 <팔레트>의 동명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수많은 모습의 아이유가 등장한다. 어느 것을 보고 싶고 어느 것에 빠져들고 싶은지는 우리의 자유다. 다만 그것은 잘 포장된 것일 뿐, 네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미워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팔레트, 아이유>


아이유는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아이 흉내’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건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 어설픈 연기에 속아 넘어가서 ‘아이인 그녀’를 관음하며 열광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그녀는 또한 관음할 거다. 그 어설픔은 의도적 연출일 뿐이다. 온갖 가면의 향연들과 진짜를 찾아대려는 욕망이 얽혀 아이유의 서사는 완성된다.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계속 부르고 싶어
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이 사랑스러워
<제제, 아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d9IxdwEFk1c


스물 다섯에 이런 완벽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녀를 나는 다만 찬양하고 응원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