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게임 <여의도정글>기획자, 아나콘다 삼형제와의 플레이
"왕따랑 놀아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평소 친구가 없음을 강조해왔던 나는 아나콘다 삼형제에게 이 게임을 선물 받고 나서도 플레이 할 사람이 없어서 쓸쓸함을 표현했다. 아나콘다 삼형제는 불쌍한 나를 위해 긴급회의를 마치고 구제를 결정했다. 같이 플레이 하자는 제안에 나는 부랴부랴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답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글을 남기기로 했다. 사실 대충 어디다가 멋지게 포장해서 쓰고 기고를 할까 했는데 한 매체에 광고성 글로 까이기도 했고 이미 나온 기사보다 새로운 인사이트를 전달할 자신도 없었기에 그냥 나의 블로그에 남긴다.
혜화동 한 카페에서 만나 카드를 펼쳐보았다. 음료를 주문받으려던 주인 아저씨는 카드와 비슷하게 생긴 이 게임의 뒷면을 보고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 새끼들 여기서 도박판을 벌이나?"
애써 네명이서 '이거 도박 아니에요'라는 표정을 날리고 그냥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방식은 간단했다. 이렇게 저렇게 막 하다가 유권자 일곱 명을 모으면 이기는 방식. 플레이 시간은 한 판에 20분 남짓 되었다.
이 게임의 특성은 시작부터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플레이어의 실력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 게임은 '보수 여당'을 선택하는 순간 절반은 먹고 가는 게임이었다. 물론 보수 여당도 차이가 좀 있다. 새누리당을 모델로 한 보수당은 전국 보수표를 쓸어먹을 수 있는데 바른정당을 모델로 한 자유당(그러나 최근 새누리당이 자유당이 되었으니 이건 함정카드다!!!)은 지역정당의 한계로 승리하기 어렵다. 노동당이니 진보당이니 이딴거 선택하면 '대연정' 말고는 답이 잘 안나오는 게임이다.
물론 나는 이게 셀링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니면 게임이 공평해야 한다는 지루한 원칙을 담아 게임을 설계했다면 별 이슈를 타지 못했을 거다. 진보당은 몇 표 안 되는 청년이나 진보에 표를 소구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그대로 반영했기에 게임하면서 현실을 환기하게 된다.
“거 진보하기 더럽게 어렵네”
게임은 생각보다 현실정치를 잘 반영했다. 유권자 카드는 지역별/이념별 조사를 바탕으로 분배했다고 한다. 그 많던 청년들은 다 어디 갔냐는 어른들의 한탄이 종종 튀어나오지만, 청년은 진보든 보수든 절대 숫자가 적다. 억울하면 많이 낳든지... (늘 가져오는 비유지만 지금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베이비 붐 세대의 절반이 채 안된다)
오버워치 개발자가 게임 출시 즈음에 한국의 중학생인가 초등학생이랑 게임을 해봤고 개처발렸단 이야길 들었다. 내가 그렇게 이 게임 기획자들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기기 두 번째로 쉬운 민주당을 뽑아도 계속 패배했다. 기획자들은 프로정치인처럼 한껏 불쌍한 척을 하다 당명개정으로 승기를 잡거나, 촛불을 기획해서 내 회심의 카드를 다 끝내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에 보수당을 뽑아 겨우 한번 이겼다. 그 승리 전까지는 합당으로 ‘게임 브레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카드 중에는 합당 카드가 있는데 이걸 쓰면 상대방은 나랑 자동으로 합당이 되게 되고 혼자서는 승리하게 된다. 새삼 3당합당의 위력을 느끼게 되는데, 합당을 하면 우리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심지어 이탈표도 없다.
어쨌든 여기까지 잡설이었고 총평을 하자면, 일단 쉽고 가벼워서 좋다. 사실 게임하면서 무슨 현실정치의 개탄스러움 이딴거 생각 안한다. 상대 조지고 표 뺏어오고 이기면 된다. 이기는 것에 관심 없으면 그냥 한명 잡고 조지면서 승패와 관계없는 희열 느끼면 된다. 물론 이러다 진짜 의가 상할수도 있다. 그냥 네명 모여서 가볍게 즐기는 게임으로서도 좋고 뭐 보수가 어쨌네 진보가 어쩌네 썰 풀면서 이야기해도 좋고.
아직 BEP를 넘기지 못하셨단다(이거 말해도 되나?) 어쨌든 큰돈 안들이고 살만한 것이니 링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