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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은 '쉬었다'라고 합시다.

자기합리화는 자기객관화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제 지난 글에서, 해외여행을 자기계발이라고 하면서 자기합리화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외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기합리화가 문제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 보려 하는데요. 좌표 찍혀서 괴로울 것에 대비하여, 미리 약(?)을 좀 치고 가겠습니다.


여러분 인생과 저는 기본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놀건 자기계발을 하건 그건 여러분 인생입니다. 

제가 여기다 제 주장을 쓴다고 제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브런치는 하다못해 광고조차 없...)

다만 저는 제 글에 공감해 주시는 분이 한분만 있어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니 글에 발끈하거나 급발진하지 마시고 담담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5천만 사또시대입니다. 날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이 있으면 난도질하는 게 인터넷 문화라서요. 이 글이 불편한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서... 공포 속에 (^^;;;) 글을 시작합니다.



원래 여행은 쉬러 가는 겁니다.


제 첫 해외여행은 취업이 확정된 후 갔던 그리스였습니다. 무려 2005년입니다. 이후 20년 동안 출장, 여행으로 많은 나라를 다녔습니다. 저도 궁금해서 구글맵을 열어서 그동안 갔던 나라들을 보니 총 14개국을 수십 회 다녔네요.

나가면 좋죠. 공항 라운지, 면세점부터 시작해서 다른 나라 가서 맛있는 것 먹고 남들 어떻게 사는지 보면 재밌습니다. 관광지 다니면 즐겁습니다. 그 가운데 물론 배우는 것도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외국 문화는 이렇구나.. 등등 

사실  우리 삶이라는 게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컴만 해도 배우는 건 있습니다. (나무위키만 하루종일 봐도...) 여행 아니어도 그 시간과 노력이면 뭔가 배웠을 겁니다. 


해외여행이 자기 계발이라고 하려면, 배운 것을 증명하면 됩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했다거나, 업무능력을 향상한 경험이 있으면 됩니다. 있으세요? 많이 나갔다 온 저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게 없다면 그냥 쉬다 온 것입니다. 쉬러 간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아니지, 놀러 가서 배운 것까지  있으면 훌륭한 것이죠.


야 잘 쉬고 왔다. 이제 또 공부해야지, 일해야지! 하면 되는데, 이걸 자기계발로 합리화하는 순간 문제가 됩니다.


예전 제 글에서 시험공부하기 싫어서 책상 정리하는 제 모습을 자아비판 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저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기 싫어서 빈둥거렸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으니 공부했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습니다. 해외로 놀러 가고 싶지만 '갓생'을 살아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부담스럽죠. 남의 눈치 열심히 보는 게 또 우리 민족 종특입니다. 

놀았지만 미래를 설계하고 깊은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의 연출이 필요한 거죠.

출처: 아주대학보



자기합리화는 메타인지에 독이 됩니다.


이 모든 건 제가 경험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니, 지금도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 뇌 속에서는 뭐라도 하려는 의지와,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늘 충돌하고 있거든요. 신나게 하루 종일 놀고 나서 머릿속에선 자기합리화가 한창이 됩니다. 이번주 난 바빴어. 다음 주에 이런 큰일이 있으니까 좀 쉬어야지. 이런 겁니다.


출처: 자기합리화 콘 


자기합리화가 반복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지?라고 하는데 실은 열심히 해외여행을 다니느라 모아놓은 돈은 없고 자기계발도 안된 청년이 되는 거죠. 랜선투어 하면서 배우는 거나 유럽여행하면서 배우는 거나 차이는 인스타 사진 밖에 없더라도, 나가서 뭘 배워왔다고 하게 됩니다.


이게 반복되면 '시험이 내일인데 책상만 깨끗했던 저'와 같아지는 겁니다. '책상 앞에서 보낸 시간이 많으니 내일 시험은 잘 볼 거야'라고 혼잣말을 했죠. 시험 결과는 굳이 말 안 해도 아실 겁니다.


요즘 뜨는 단어 중 메타인지(metacognition / meta認知)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자기 객관화' 일 것 같습니다. 

자기 합리화와 자기 객관화는 병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하세요.


아 써놓고 보니 꼰대력 만렙 어쩔. ㅠㅜ 인정합니다. 인정해요. 

그런데 살아보니 느끼는 것이라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결국 메타인지가 잘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막 채찍질 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진리죠. 그런데 그게 참 힘듭니다. 

그러니 최소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도 엄격해야 합니다. 매일 놀고 싶은 자신을 컨트롤하는 건 힘들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는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되면 해외여행을 자기계발로 말하지 못합니다. 잘 쉬고 왔다고 인정할 뿐이죠.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도망갈 구석을 만들지 마세요. 쉰 건 쉰 거고, 일한건 일한 겁니다. 




마치며 : 엄격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날것의 나.


자신에게 엄격하면 필연적으로 자신과 싸우게 됩니다. 무협지나 소년만화에서 늘 나오는 장면입니다. 비기를 배우기 위해 수련하는데 최강의 오의는 결국 자신을 이겨야 얻는 뭐 그런 내용입니다.


저는 제가 되게 잘난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2030 시절에는 세상이 저를 못 알아볼 뿐, 저는 엄청난 인재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되었죠.

하지만 40대 중반을 지나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결과로 과정이 증명되는 시기거든요. 저 또한 메타인지를 할수록 제 단점도 알게 되더군요. 괴로운 순간입니다. '아 나도 겨우 이 정도였나'라는 탄식. 

힘듭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빨리 올수록 성공한 삶입니다. 자신의 그릇이 태평양이라 생각하다가 간장종지임을 알았을 때 충격은 큽니다. 하지만 빨리 간장을 담을 생각을 하는 편이 좋습니다. 나중엔 쓸모없는 바닷물만 담을 수 있으니까요. 


제 예전 글과 달리 오늘은 무거운 주제를 꽉꽉 눌러서 이야기했네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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