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사라진 요즘
밤 10시에 청승맞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또 더욱 청승맞게 비는 내일 오전까지 내내 가시질 않는단다.
어제 오랫만에 누나가 본가인 청주로 내려오고
오랫만에 가족끼리의 재회였지만
나의 행동으로 불편한 상황이 터지고야 말았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을, 적어도 소수자인 내가, 언제부턴가 실천하고 있지 않다.
작년 계약직 일이 끝나고 본가로 내려온 이후 불편했던 감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나도 어른이 되었고, 이제 누군가에게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사랑받고, 이해받고, 누군가 신경써주면 좋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것같다.
2년 전이 그랬다.
소진증후군과 함께 우울증이 와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을 피곤하게 했다.
어쩌면 모두가 그러한 증상을 겪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가족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걸 많은 짜증과 화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때서 부턴가 가족안에서도 각자의 삶이 나눠졌다.
그런 와중에 한번의 이메일을 교환하고, 한번의 만남과 한번의 통화를 했던 사람이
하늘나라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한달전에 DM을 했던 사람
그와의 기록을 남아있고 현신은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그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 나를 위로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를 시절
그러니까 글쓰는 것에 미쳐있던 때에 나는 뒤로라는 잡지를 알게되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기획하여 잘 쓰고 싶다는 생각과, 나의 정체성을 조금더 공공히 하여
무엇인가를 완결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보냈을때 나의 브런치 글들을 보고 회신이 왔다.
필진모집을 위해 미팅을 하기 위한 메일이었다.
그리하여 추웠던 겨울 이태원의 골목을 해매며 아기자기한 사무실 앞에 도달했었다.
설레임과 긴장을 가진 나에게 그는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내린 홍차와 경단, 플레이팅 된 접시와 포크까지.
그는 나를 보내는 와중에도 출판한 책과 사무실에 있는 책들을 챙겨주었다.
꼭 읽어야 한다는 그의 말투와 표정이 뇌리에 남는다.
살면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감동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한 사람들관의 관계에 지치고, 많은 것을 포기했던 나에게
그는 정말 고마웠던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는 어쩌면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더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첫사랑의 실패와 같은
감정이라고 치부해도 될까.
나에겐 너무나도 억울한 날이다. 오늘은 좀 마음편히 울고
자야하는 시간을 망각한 채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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