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될대로 될 인생 Nov 29. 2016

6.그래, 이렇게 쉬어가는 것이다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찾아온 여유

그렇게 나는 처참한 잡 구하기의 실패를 연달아 맛보았다. '가자마자 일해야지!' 다짐했지만 결코 내 계획대로 순순히 되어주질 않는구나. 그렇게 나는 강제로 2달이라는 시간을 놀게 되었다. 통장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통장잔고를 확인하고 은행 밖을 나가면 모든 것이 지워졌다.

 10월의 가을.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기에 고민 따위 생각날 일이 없었다. 할 일도 없는 나는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대충 집히는 옷을 걸쳐 입고 그냥 동네를 걸었다. 우리 집 근처에 작은 강이 하나 있었다. 그 강을 멍하니 바라보면, 마음속 날 더럽히는 것들로부터 깨끗하게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Reflection. 내 얼굴까지 비칠 것 같은 투명함. 


이 호수의 이름을 '하늘거울'이라고 지었다. 하늘이 오늘 자신이 모습이 보고 싶을 때 이 곳을 찾아오리라. 목을 꺾어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내려볼 수 있다. 사실 내 로망 중 하나였다. 그냥 이런 놀라운 자연 광경을 잔디 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느껴보는 것. 캐나다의 자연은 역시나 나에게 그렇게 보답해주었다. 

하늘거울의 진짜 이름은 patterson Creek

잡 인터뷰에서 바닥 끝까지 처참함을 맛봐도, 밖을 나오면 '어머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캐나다의 자연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청량하고 깨끗하다. 

이 길고 긴 강을 따라 걸으면 우리 집이 나왔다. 매번 버스 탈 돈이 아까워 이 강을 따라 집까지 하염없이 걷는다.

이런 게 바로 여행과 다른 점일까. 내가 만약 여행으로 캐나다를 왔다면, 이 강을 볼 여유조차 없었겠지. 아니 알지도 못했겠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생활하기에, 이 자연을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는 거야.


풍성한 자연이 깃든 이 곳을 걸을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 문을 열고 나오면 펼쳐지는 알록달록 단풍 잔치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나무들을 보면 얼마나 오래 이 곳을 지켰을까 생각한다.

파랗고, 높고, 고요하다.

이 모든 곳이 집에서부터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니까 그냥 발만 딛어도 예쁘다. 이 넓고 넓은 캐나다 땅덩어리를 구석구석 다 가보고 싶은 욕심이다. 캐나다에서의 동부는 단풍으로 원래 유명하지만, 이것들이 피고 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여기서 사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혜가 아닌가. 

 하늘은 파랗고 단풍은 색색들이 찬란하고, 잔디는 빛나도록 샛 초록이다. 

공원에서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신혼부부
오타와 노트르담 대성당

누군가가 워킹홀리데이는 한국을 도망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 이런 곳으로 도망 칠 수 있다면, 얼마나 로맨틱한 도피겠는가. 이런 도피라면 한 번쯤은 모든 걸 접고 도망쳐봐도 손해 볼 것 없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부터 어머니 용돈 한번 받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왔던 나에게 이보다 더 아찔한 도망은 없었다. 


나는 여유라는 것을 처음 배운게 아닐까 싶다.


처음엔 이런 한가로움이 낯설었지만, 어느새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면, 

'아 이런 게 잠시 쉬었다 간다는 것일까. 몇 년이 될지 모르는 내 인생에 딱 1년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일 수도'



우리 모두에겐 이런 도망이 필요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잡 구하기. 정말 쉽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