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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14. 2019

달콤하고 은은하게

나를 거쳐간 많은 술

                                         

  요즘은 이 질문이 금지되었다는데, 내가 면접 보러 다닐 때는 “술 잘해요?” 가 따라붙던 때다. 그런 질문에 대비해 “적당히 마실 수 있습니다. 맥주 한 병, 소주는 두 세잔 마실 수 있습니다.”라는 답안까지 준비했었다. 주량을 적는 이력서 칸도 있었다. 택도 없이 적게 적는 주량을 보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키가 커서 그런가? 나는 남들보다 많은 연료를 넣어야 한다. 동력이 많이 필요한지, 여러 개의 전지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듯싶다. 술과 음식을 잘 먹는다.

  회사 다닐 때는 싼 값에 마시는 폭탄주나, 초록병의 막걸리를 주로 접했다. 진하게 취하는 통에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 그런데 전주에 내려갔을 때 접했던 ‘모주’는 깔끔하고 깊숙했다.

이거 모쥬? 왤케 맛 있쥬?



  한 동안 이자까야에 빠져 모든 약속을 그곳에서 잡았다. 문어를 고추냉이에 넣고 절인 ‘타코 와사비’를 좋아한다. 진토닉과 레몬을 짜넣은 일본 소주는 한 병만으로 이야기를 녹아낼 수 있는 긴 시간을 선물해 준다. 다음 날 어마어마한 숙취와 함께.

  향긋한 고량주나 위스키는 다음날이 되면 어제 내가 무슨 향기를 맡으며 술을 먹었는지 종일 확인시켜줄 만큼 강해 내 몸에 안 받는다.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독주는 말벌을 담가 만든 ‘노봉방’주다. 호기심에 한 모금 마신 다음날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진 걸 경험한 뒤 피곤하면 가끔 한 모금씩 한다.     




  결혼 전 신랑은 학교로 날 데리러 올 때 종종 도시락을 사 왔다. 어떤 기념일에는 종일 밥도 못 먹고 일하다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저녁에 학교로 온 신랑이 연어와 샴페인을 들고 왔다. 생에 처음 접한 샴페인이었다. 기포가 사르르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데 달콤했다. 알코올 냄새도 없이 서서히 몸이 데워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은은한 술이다.   

  유럽여행을 하며 좋았던 것은 식전 와인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 가볍게 즐기는 식전 와인이라니... 토종 한국인인 나는 왜 저런 것이 이토록 설레는 걸까?

  신혼여행 다녀오는 길에, 돔 페리뇽을 한 병 샀다. 한 번은 마셔보고 싶었다. 돔 페리뇽은 17세기 오빌레 수도원의 피에르 페리뇽이라는 사제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그는 시력은 좋지 않았지만 후각과 미각이 예민했고, 연구 끝에 일반적인 와인과 다르게 오크통 숙성 대신 병 안에서 숙성이 이루어지는 와인을 만들어 냈다. 돔 페리뇽의 돔은 성직자의 최고 등급을 말하는 다미누스를 줄여 부른 호칭이다. 이렇게 돔 페리뇽이 탄생했다.

  비싸서 언제 누구와 딸지 기약만 하기를 4년째. 샴페인은 오래 두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하던데 여전히 그것을 손댈 수가 없다.      


  모든 것에는 총량이 있다던데, 내 주량의 총량은 아마 회식으로 거진 소비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맥주 한 병에 눈이 감긴다. 내 술의 총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좋은 것들로 채우고 싶다. 기분 좋아지는 한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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