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살펴보기 2편
이번 북유럽 신화 살펴보기 2편에서는 지난 번에 예고한 대로 젠틀섹시의 대명사 히들이...아니, 톰 히들스턴이 연기했던 "로키"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블 세계관 속에서는 사악하지만, 짠하게 등장하여 헐크에게 내동댕이 쳐지고 비전과 완다를 탄생시켰던 로키! 마블의 토르와 로키의 원전이 되는 북유럽 신화의 실제 로키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1. 트릭스터 :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로키’
로키는 북유럽신화에 있어서 가장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북유럽 신화의 주요 사건들은 로키에 의해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해결 역시 로키가 스스로 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신화소의 하나인 ‘트릭스터’의 모범적인 예가 바로 로키이다.
트릭스터란 무엇인가? 필자는 세가지 키워드로 그들을 나타내겠다. ‘변화’,’경계’,’이중성’이 그것이다.
1) 변화
‘변화’에서 시작해보도록 하자. 트릭스터들은 대개 모습을 바꾼다. 그들은 개와 고양이, 하이에나 등등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로키 역시 많은 이야기에서 노파, 연어, 말 등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때문에 그들은 그들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번개를 볼 때 우리는 제우스를, 망치를 볼 때는 토르를, 애꾸눈을 볼 때면 오딘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트릭스터들은 대개 굳어있는 ‘상징물’이 없다. 이것은 로키가 불의 신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 어떨 때는 작다가도, 어떨 때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만큼 커지고 파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불은 일정한 모습이 없는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없고, 불안정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 로키말고 그 누가 불을 다스릴 수 있을까.
2) 경계
‘경계’는 즉, 모호함과 결부된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 한 ‘변화’하는 자들로서 트릭스터에서 좀 더 나아간 이야기이다. 신화 속 인물들은 대개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각각은 하나의 성질, 특징이 상징화된 존재로서 일관된 존재로 나타난다. 하지만 트릭스터는 다르다. 그들은 입체적인 인물로서, 가늠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북유럽 신화 속 로키는 수많은 사건들을 벌이지만, 또 그 많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도 로키이다.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 보며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로키는 좋은 신인가, 나쁜 신인가. 분명히 하는 짓은 고약하다. 그러나 ‘정의’로 대변되는 다른 신들 역시 이러한 사고를 치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선하다 여겨지지 않은가. 이렇게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라는 경계 선 상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이 트릭스터들이다.
3)이중성
‘생성’과 ‘파괴’라는 것으로서 이들의 이러한 이중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트릭스터에 분류되는 신화의 인물들 중에서는 창조주인 동시에 파괴자인 이들이 많다. 기존에 있는 것을 파괴하고, 혹은 없던 것을 생겨나게 하는 이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스스로 파괴한다거나, 혹은 각각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쌍둥이나 형제로서 나타나 하나가 세계를 만들어 내면,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또 다른 형제이다. 로키 역시 수많은 사건들을 생성해냄과 동시에, 그 사건들을 자신이 해결하는 것으로 파괴한다. 나아가 북유럽 신화의 세계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도 그이지 않은가.
이처럼 기존에 없던 것을 생성하기도 하고, 또 존재하던 것을 파괴해 버리는 트릭스터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기존의 질서나 규범에 맞서는 자들인 것이다.
결국 변화-경계-이중성은 결부된다. 변화한다는 것은 즉,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선 상에 있다는 것이고, 이 경계에 서 있음으로써 그들은 경계 밖의 것들을 자신의 것을 선택적으로, 때로는 동시에 취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아무런 기준 없이 볼 수 있다. 그들이 벌이는 일들이 이해불가하고, 정말 파렴치할 지라도 그저 한 대 쥐어박는 것으로 그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
나아가 이러한 트릭스터들이 있기에 신화는 그렇게도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것이다. 그들은 완벽하기만 한 신들 사이에서 말썽꾼의 역할을 톡톡히 하여, 신화의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2.나가며
너무나도 추웠던 고대의 북유럽.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당시 북유럽인들은 끊임없이 투쟁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람이건 간에 말이다. 그래서 북유럽 신화는 다른 신화들에 비해 전투적이고, 격동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영생’이 아닌 ‘죽음’을 받아들였던 당시 북유럽인들의 생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 여겨진다.
북유럽의 신화는 위그드라실을 필두로 하여 드워프, 엘프 등의 요소들은 너무나도 익숙해져 희랍신화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신선함을 우리에게 주었다. 들어가며 언급하였듯, 영화나 게임 등 현대 많은 컨텐츠들의 모티브가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발표와 글을 준비하면서 책들과 논문을 찾아보았지만 수가 많지는 않았다. 책은 대개 1차적인 정보전달(신화 에피소드 소개나 인물 소개)에 그쳤고, 논문의 수 역시 매우 적었다. 특히 한국사람들에게는 종교신화 외 신화로서는 희랍신화만이 익숙한 실정이다. 때문에 연구가 되어 지는 것도 희랍신화가 대부분이다. 북유럽 신화가 단순히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되어 희랍신화가 우리에게 교양으로 자리 잡았듯, 이들도 학문으로서, 교양으로서 얼른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