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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Jun 03. 2024

나는 신발충입니다.

나이키 운동화가 갖고싶었던 9살 아이의 이야기

 대학교 동기 친구들 다섯 명끼리의 생일계가 있다. 생일 때마다 2만 원씩 모아서 당사자가 고른 10만 원 상당의 생일선물을 주는데, 이불과 같은 생필품을 고르기도 하고 등산용품 립밤 가방 등등 자기 취향에 맞게 필요한 물건들을 선택했다. 어느덧 우리가 이 계를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가 다 되었다. ‘나는 그동안 어떤 선물을 골랐었나’ 곰곰이 떠올려보다가 약간 소름이 끼쳤다. 한 해도 빠짐없이 신발만 산 것이다. “신발충이네. 신발충이야” 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긍정의 끄덕임을 연신 해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나보다 네 살 위의 언니는 우리 집의 믿음직한 큰 딸이었다. “큰딸이 살림밑천이지!”라는 말은 어린시절 아빠로부터 귀에 인이 박이게 들은 말 중 하나였다.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성실한, 그야말로 살림 밑천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편은 아니었음에도 살림 밑천 언니는 예외였다.


 흑백 디스플레이에 16화음 핸드폰이 보편적인 시절이던 어느 날, 컬러화면에 64화음 벨소리의 핸드폰이 출시되었고 티비에는 온통 광고로 도배되었다. ‘와 엄청 비싸겠지… 저런 핸드폰은 대체 누가 쓸까?’라며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광고를 보고는 했었다. 하지만 핸드폰의 소유자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언니에게 당시 수십만원 짜리의 핸드폰을 거침없이 사주셨고 “다른 반 애들도 다 구경 왔었어!” 라며 신나 하는 언니를 보는 일은 나에게는 그저 덤덤했다. 화려한 벨소리와 휘황찬란했던 액정은 나에게 너무 먼일이었다. 


 어느 날, 언니가 나이키 가방을 메고 등장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64화음 핸드폰을 바라보던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나이키의 고급지고 멋들어진 v 로고는 나에게 하나의 이상과도 같았다. 집이 좀 산다는 친구들만 가지고 다니던 나이키를 우리 집에서…. ‘나도 나이키 갖고 싶은데…’ 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던 운동화가 낡아 엄마와 함께 운동화를 사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나이키가 아닌 동네 시장으로 향했다. ‘World Cup’이라는 간판의 매장으로 들어가 몇 개의 운동화를 보았다. 물론, 수많은 운동화 중에 나이키는 없었다. 결국 우리 집에 온 건 데님소재에 노란색 끈으로 묶은, 나이키 코르테즈와 유사한 모양의 브랜드 없는 운동화였다. 속상할 법도 한데 나이키도 아닌 시장에서 파는 운동화가 뭐가 좋다고 신나서 팔짝팔짝 뛴 기억이 선연하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니면 “나도 갖고 싶어!!!”라며 떼쓰는 게 어려웠던 걸까. 당시의 솔직한 나의 마음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성인이 된 지금 집안 신발장은 온통 내 신발로 가득하다. 나이키 아디다스 아식스 운동화는 셀 수도 없고 첼시부츠 로퍼 롱부츠 등등…. 사계절의 신발을 한 신발장에 모두 넣어둘 수 없어 겨울에는 여름 신발을, 여름에는 겨울 신발을 박스에 넣어 창고에 쌓아둔다. ‘어디 뭐 예쁜 신발 없나…’ 온라인 쇼핑몰을 뒤적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신발을 살 때마다 또 사는가 싶어 죄책감이 들지만 ‘어린 시절 결핍 때문이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성인이 되고 “엄마 난 왜 나이키 운동화 안 사줬어?”라고 묻지는 못했다. 이유가 있으셨겠지. 싶다가도 9살 나에게는 그게 참 대수로운 일이었을텐데 싶기도 하고. 지금도 쇼핑몰 장바구니에 오만가지 운동화가 넘쳐난다. 9살 초딩의 욕구는 언제쯤에나 다 채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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