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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Sep 12. 2020

한국멋사냥 - 통영 #1

통영 방문에 앞서 충렬사에서 충무공께 인사를 올리다


올해 첫 가족여행


올 한해는 그토록 좋아했던 해외여행도 어려워져 아쉬운대로 국내로 눈이 가게 되었는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국내에도 숨겨진 보석 같은 곳들이 참 많다고 느낀다.


이번에는 지방에서 사촌이 결혼식을 하게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진주로 내려가게 된 김에 남도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갈 곳도 없어 얼마 쓰지도 못했던 휴가를 이런 때 내본다.


동이 막 튼 금요일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 수도권을 벗어나기 위한 준비를 해본다.

얼마만의 가족여행인가... (아마도 올해는 처음이지 싶다)


코로나로 재택도 많아지고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출근 교통 체증은 크지 않다.

다행히 날씨도 좋아 푸른 하늘을 보며 2-3시간을 달린다. 어느덧 대전을 지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던 충남 금산군.


휴게소 이름이 '인삼랜드 휴게소'인 걸 보니 이 고장은 인삼이 유명한가 보다.

휴게소 뒷편에 가니 저렇게 사람 모양을 한 인삼 뿌리 두 근이 다소 기괴(?)하게 연못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인삼이 유명하다는데 안 마셔 볼 수 없을 것 같아 가족 셋이서 생인삼마즙 3잔으로 아침을 건강하게 시작해 본다.

요즘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나는 전날 하락한 미국 주식시장의 영향으로 혼란스러워진 한국 장세를 지켜보고 있다. 여행을 떠나더라도 아직 속세에서 다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연못에는 잉어 떼가 있었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했을 뿐더러 다들 배가 고팠는지 먹이 좀 달라고 인기척만 보이면 아주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입을 벌려대는데 졸졸 따라오는 게 신기하면서도 그 수가 너무 많다보니 좀 징그럽기까지 했다.

물고기 떼를 보며 신기해 하는 아빠와 나

그냥 보면 큰 인삼이 부모고 작은 인삼이 자식이라고 생각할텐데...

어느덧 시간은 이렇게 흘러 키만 보면 그 반대가 되었다. 엄마와 나의 사진처럼...

한동안은 외국에 사느라, 한국에 있어도 내 일 바쁘다고 잘 챙겨드리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시간은 이렇게 흘러 있네.

맨날 찌그닥째그닥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시간을 좀 더 자주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다시 바퀴를 굴려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향해 본다.


아빠와 나는 초등학교 동문?!


아빠의 고향은 경남 사천이다.

초딩 시절 잠시 아빠의 부임지가 사천이었던 적이 있어 나도 이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당시 다녔던 초교가 동성초등학교라는 곳인데 재밌게도 아빠가 나온 모교이기도 하다.

나도 비록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아빠와 같은 초교를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자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건 참 흔치 않은 경험인 것 같다.


평소에 부모님께는 '사랑한다'는 얘기하는 게 아직도 쑥스럽고

손 잡고 사진 찍은 것도 어색한데 한해한해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그리고 나)을 보며 이런 표현들에 좀 더 적극적이고자 노력해 보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설프지만 부자가 함께 나온 학교 앞에서 손을 잡고 사진 하나를 남겨본다.


안타깝게도 사천은 우리가 떠난 후로 상전벽해하였고 나와 아빠의 추억이 서려있던 학교도 지금은 원래 장소에서 다소 떨어진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어 옛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옛날(?)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커보였던 당시 운동장 (지금과는 달랐지만)도 어른이 되어 와보니 그렇게 작아보일 수가 없다.

건물도 더 커지고 현대적으로 바뀌었고 운동장에는 트랙도 깔렸지만 예전에 소박했던 시골 학교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그리워진다. 추억의 소중함이란 그런걸까?


그 시절 학교 화단에는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모형이 하나둘 숨어 있었는데 그걸 찾는 것이 마치 사파리라도 하는 것처럼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었던지... 지금 남아 있는 특색이라곤 남도의 학교 답게 야자수 스러운 나무들이 보인다는 것?! 정도...


코로나 때문인지 금요일이었음에도 학교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내 얼굴의 반을 가린 마스크, 인기척 없는 평일 학교 운동장을 보며 이 상황이 참 여러모로 정상은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셨어요?


추억의 초교를 들린 후 친조부모 산소가 있는 사주리에 들렀다. 초등학교 이래 왔으니 정말 오랜만에 왔다. 벌초가 되지 않아 풀이 무성히 자라 있었지만 옛날의 기억들이 다시 돌아온다. 추석 명절이면 가족친지들과 제사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었던 기억들...


하나둘 출가외인 된 사촌들도 있고, 이제는 그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들리고 절을 올렸다. 세운 지 십년도 넘은 묘비의 글자들은 그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듯 선명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잊혀지기 싫다는 고인의 의지였을까...


묘비 앞에 차린 음식들 앞으로 거미 하나가 내려왔다.

분위기 때문일까. 왠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미를 빌어 차린 음식을 드시러 오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거미를 쫓기보다는 많이 드세요~라는 마음이 들었다.


오랜 기간 성묘도 못한 손자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사를 드리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충무공의 고을 돌기 전에 장군께 먼저 인사를 올리다


이번 가족 여행의 계획은 사천 -> 통영 -> 거제 -> 남해 코스.

간단히 성묘까지 마쳤지만 아직 시간은 오전 11시..

통영에 도착하니 정오밖에(?) 되지 않았다.


장거리 운전이니만큼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집은 전통적으로(?) 가족 여행은 아빠가 운전대를 잡으신다.

한 때 파일럿이셨던만큼 안정적인 운전 실력도 실력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본인이 하고 싶다는 아빠의 의지도 작용했다.

그래서 아들은 관광지와 맛집 그리고 숙소 안배 등 다른 것들을 챙기기로 했고


그렇게 우리의 첫 관광 스팟은 통영 충렬사로 정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통영이 아니라 '충무'로 불렸었는데 (충무김밥의 그 충무 맞다) 언제부턴가 이름이 '통영'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이 도시는 충무공 이순신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도시이기도 해서 첫 행선지를 충렬사로 정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입추를 무색하게 하리만치 뜨겁게 내리쬐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입장 전에는 방문자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게끔 되어 있었고 방문자도 거의 없었다.

코로나에 평일이라 그런지 한적해서 좋았다.



충렬사의 가장 안쪽에 이순신 장군의 위폐를 모신 사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영정과 방명록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승무패의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며 왜적을 물리쳐서 조선을 지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그.

거북선을 건조하고

자신이 모시던 임금의 시기로 유배도 보내지면서도, 고작 12척의 배만으로 몇 백척의 배를 격파하는 등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나라에 대한 충성 하나만으로 극복한 그를 보며 의지만 있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딨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진정한 grit의 완벽한 예.


얼마나 대단했으면 일본(특히 해군 제독들)에서도 신이라 불리였을까...

정말 레전드가 아닐 수 없다.


충렬사 뒤는 나지막한 산이 있었는데 자작나무 같이 하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찍어준 사진들.

여행 후 사진을 공유했을 때 다른 사람의 사진을 받으면 당시 그 사람이 보았던 경치와 관점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느낌은 참 특별한 것 같다.

말로는 전달하지 못한 당시 그 사람의 생각을 전달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통영 첫 행선지에서 충무공께 인사를 올린 후 통영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 가족 셋은 걷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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