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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Feb 12. 2023

 나는 달리지 않는다

나는 잘 달리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기 전, 녹색 불이 깜박일 때 재빨리 달려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 느긋하게 내 속도대로 걸어가 횡단보도 앞에 선다.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휙휙 옆을 스쳐 지나가도 그저 서서 기다린다. 다음 신호에 가지 뭐. 금방 또 바뀔 텐데 뭐가 급하다고 뛰어간대. 저러다 넘어진다 넘어져,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쯔쯧.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피곤하게 서서 재게 발을 놀리는 사람에게 꿍얼꿍얼 들리지 않을 잔소리를 쏟아낸다. 일어나지도 않은 나쁜 일을 상상하며 뛰어가는 사람을 성질 급한 인간, 우악스러운 인간, 조심성 없는 인간, 언젠간 화를 당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인간으로 매도해버린다.


서울에 있는 한 출판사에 다닐 때 들은 이야기다. 내가 다니던 출판사는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5분, 마을버스를 타면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대부분 걸어 다녔고, 여유가 없거나 몸이 힘들 때만 가끔 마을버스를 탔다. 안국역에서 북촌 일대를 돌아다니는 그 마을버스는 내 기억에 늘 사람으로 가득했다. 좌석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고즈넉한 길거리를 내다보며 풍경을 즐길 만한 여유 따윈 없었다. 늘 앞사람의 머리통이 코앞에 있었고, 뒷사람의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와닿았다. 버스와 함께 좌우로 흔들리는 동그란 손잡이는 내 몫까지 남아 있지 않아 천장 가까운 곳에 붙은 바를 잡아야 했고, 나처럼 동그란 손잡이를 차지하지 못한 손들이 바에 매달려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곤 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짐작하지만, 다른 노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하지만 출근 시간의 3호선은 아비규환이었다. 앞뒤, 옆 사람과 몸이 닿는 것은 물론이요, 한 번 정차할 때마다, 일산에서 서울 쪽으로 역을 하나씩 지나쳐 갈 때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승객들에게 밀려 하체는 이쪽에, 상체는 저쪽에 가 있는 형국이 되었다. 30분 가까이 그렇게 가다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실제로 토할 것 같아 구파발, 연신내쯤에서 내리기도 했다. 다음 열차가 오고, 그다음 열차가 와도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 안으로 몸을 던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을 가늠해보고 이번 열차까지 보내면 지각이다 싶을 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아비규환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만원 지하철에서 내려 만원 버스에 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걸었다. 회사까지 걷는 그 15분이 여전히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는,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외근을 다녀온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오는데 저 앞에 서 있던 마을버스가 서서히 출발하는 게 보였다. 반사적으로 마을버스를 향해 뛰다가 버스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 금방 달리기를 멈췄다. 그런데 웬걸. 속도를 내려던 마을버스가 저 앞에 정차하는 게 아닌가. 선배는 쾌재를 부르며 마을버스를 향해 다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 버스비를 내는데 기사님이 말을 걸어왔다.

“아니, 젊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어떡해.”

갑작스러운 말에 선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기사님이 계속 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포기해도 늦지 않아요.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니까.”

선배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우와, 기사님 멋지다” 환호성을 질렀다. 기사님이 하신 말씀도 멋졌지만, 뒤늦게 뛰어오는 승객을 외면하지 않고 태워준 마음, 젊은이에게 포기 대신, 좌절 대신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 한 그 마음이 너무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가끔 이용하는 주유소에서 이벤트를 했다. 그 브랜드의 주유소를 이용하면 3천 포인트를 지급하고, 그 포인트를 샴푸, 바디워시, 프라이팬 등 생활용품과 교환해주는 이벤트였다. 그런 이벤트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같은 브랜드의 주유소를 이용하는 아빠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벤트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스타일인지라 다소 시큰둥한 마음으로 주유소로 향했다. ‘어차피 주유소 갈 때 됐으니 그럼 그곳으로 가볼까’ 정도의 마음이었다.

주유하는 차는 평소와 비슷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직원의 말투와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차를 세우고 주유 입구 열림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고 앉아 있는데 주유 입구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는지 그 직원이 입구를 열라고 소리치며 차를 탕탕탕 두드렸다. 손바닥에 신경질이 묻어 있었다. 주유를 시작하고는 다가와 카드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들고 있던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 건네주려 했다. 잠시 서서 기다리던 직원은 그 시간이 지체된다고 생각했는지 “아, 좀 빨리빨리 좀 줘요” 말하고는 뒤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말투에 신경질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다시 돌아온 그에게 이벤트에 관해 물었다. 주유 기계에 카드를 꽂던 그는 이벤트 하는 거 맞다고, 포인트카드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를 등지고 선 그의 뒷모습에는 포기 같은 것, 포기를 결정했을 때의 감속 같은 것, 서서히 꺼져가는 기운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카드와 영수증을 받고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품에 생활용품을 들고 들어오지 않은 이유를, 빈손으로 돌아온 이유를 엄마에게 설명했다. 직원의 말투와 행동이 시큰둥한 내 마음을 재로 만들어버렸다고. 아니, 사실은 이렇게 말했다. 그 직원이 너무 기분 나쁘게 굴어서 그냥 돌아왔다고. 더 대거리를 하다가는 더 불쾌한 일을 겪을 것 같아서 그냥 돌아왔다고. 엄마는 말했다.

“기분 좀 나쁘다고 왜 바보같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해? 거기가 기분 나쁘면 다른 데 가서 받아오면 되잖아.”

그 이익 없어도 굶어 죽지 않는다고,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걸 왜 욕심내냐고, 이제 그런 데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런 악착같음이 싫다. 공짜 물건을 꼭 받겠다고 달려들고, 할인 매대에 몸을 던져 물건을 쟁취하고, 조금이라도 더 싼 물건을 사겠다고 동네 슈퍼를 다 훑고 다니는 악착같음, 조금 더 빨리 가겠다고, 저 신호를 놓치지 않겠다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악착같음, 낯모르는 타인과 몸이 포개지고 살이 닿으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만원 지하철에 몸을 꾹꾹 우겨넣는 악착같음, 이런 생의 악착같음이 참 싫다.

인생 다 산 노인처럼 피곤하게 서서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을 비웃고 걱정으로 포장한 저주를 퍼부으며 도인이라도 된 듯 그들을 한심해하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나는 더 꼴 보기 싫다. 난 이런 아비규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속이 울렁거려서 도저히 못 버티겠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빠져나와 토악질이나 하고 있는 나는, 꼭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한탄하고 있는 나는 비겁해서 더 싫다. 누군가의 악착스러움에 기생해 살면서 겉으론 우아한 척, 아무런 욕심 없는 척 사는 내가 나는 더 혐오스럽다. 해보지도 않고, 달려보지도 않고, 견뎌보지도 않고, 늘 남의 인생 쳐다보듯 내 삶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떠드는 내가 나는 참 싫다.


포기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준 그 기사님은, 젊은이에게 좌절 대신 희망을 심어주려 하셨던 그 기사님은 악착같이 사는 사람의 힘을, 악착같은 삶이 가진 짠한 사랑스러움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가진,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는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선배가 들려준 그 이야기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종종 떠오르는 이유는 나는 여전히 악착같은 삶이 가진 생생한 생명력 대신 그 우악스러움과 고단함에만 시선을 두는, 뒤틀린 심사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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