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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냥 Jul 28. 2016

판진, 바다 향기 물씬 머금은 예술의 도시

베이징에 이제 좀 자리를 잡아간다 싶었는데, 한국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비자 연장 때문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다.

돌아가는 날 쯔음이 하필 중국에 단 두번 뿐인 휴일 중 하나인 노동절(劳动节/Laodongjie)이었다. 그래서인지 비행기 티켓 값이 하늘을 날았다. 평소 가격의 두배 이상인데다가 심지어 가격이 확정도 아니어서 여차하면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는 상황.


마침 최근에 연락했던 중국 친구 정중(郑中)이 자기네 고향으로 놀러오라고 난리여서, 북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면 좀 더 저렴하지 않을까를 찾아보다가 결국 판진행 기차를 끊고 말았다.

<기차연착과 취소로 짐을 바리바리 싸서 기차역에서 대기중인 대륙 중국인들>


정중이라는 청년은 한중청년불패 1기 모집 때, 본인의 할아버지가 북한인이었다며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적극적으로 연락이 왔었던 친구. 그래서, 첫번째 오프모임을 처쿠카페에서 했을 때 4시간 기차를 타고 올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인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열정이 컸던 친구였다.

<작년 10월 30일 처음 만났던 정중(가운데) 남동생 포스 물씬>


그 뒤에도 내가 베이징을 갈때마다 어떻게든 참가해서 수 많은 한국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늘 나와 어떤 사업이든 같이 하고 싶어했다. 특히나 자기 고향에 오라는 말을 몇번이고 했는데 - 이번 기회에 드디어 가보게 된 것.


적어도 한시간 전까지 기차역에 도착해야한다고 정중이 겁을 줘서, 일찍 나왔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금 여유있게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판진까지는 약 4시간이 걸리는데 - 중간에 배고플까봐 기차 바로 앞 노점상에서 인스턴트 라면도 샀다. 중국열차라면 분명히 뜨거운 물도 있을거라고 믿으며.. 

(생각해보니 북경-상해 야간열차에서도 정수기 있었음)

<6元짜리 라면을 사서 중국인들 처럼 당당히 의자에 앉아 먹다>


긴긴 시간 노트북을 꺼내어 글을 쓰고 있자나 오른쪽에서 걸출한 아저씨가 중국어로 말을 걸어 온다. 이거 한글이냐고. 그렇다 대답했더니, 그때부터 빠른 중국어로 질문과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나 중국어 듣기 잘 못하니까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며 핸드폰에 사전을 사용해 한시간 넘게 대화함.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심하게 귀찮게 물어보셔서 - 왼쪽에 주무시고 계신 모녀분들께 고개를 돌려 잠들고 말았다. 


그 아저씨가 가고 난 사이, 내 옆에 앉을 할머니는 저 아저씨랑 더이상 이야기 하지 말라며 ‘주의 안전(注意安全/zhuyianquan)’을 몇 번이고 말씀해주셨다. 조그만(?) 외국여자애가 혼자서 중국인들이 바글대는 기차에 탄 사실이 못내 걱정되셨는 모양이다. 암튼 은근 다정한 두 모녀분에게 ‘弟一次 做火车(기차를 처음 타봤어요)’부터 시작해 ‘好看,美呀(예쁘다)’란 단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내리기전 사진도 찰칵!

<사진찍어도 되냐는 말에 쑥스럽게 웃어주시는 두분>


그리고 보고싶다고 징징대던 정중을 4개월 여만에 만났다. 본인이 판진에서 식당을 두 개 운영한다며 큰소리 쳤었는데 알고보니 하나는 자기 사촌 누나 꺼고, 자기는 작은 인스턴드 누들집을 하고 있었음 (역시 아시아 남자들의 뻥튀기는 중국에서도 통용되는 듯) 어쨌든 날 위해 막 사온 듯한 싱싱한 해산물을 쪄서 한 그릇 내놓았다. 

<지금도 그리운 저 싱싱한 해물들..>


‘그럼 나 어디서 잠?’이라는 질문에 자기집이 두개라며 그 중 한집에서 지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본인이 자취하는 집을 나에게 내주고 부모님 집에서 자는 거였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인사드리는 게 예의일거 같아 바이주 두병을 사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그리고, 난 아버님이 하시는 소위 ‘북조선말’을 듣게 되었다. 손님이 온다고 본인이 직접 요리해주셨는데..난 이날 점심에 이어 저녁도 엄청난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었다. 흐허허허 - 북경에서 빼왔던 살이 여기서 다시 도로묵이 되는 구나ㅠㅜㅠ

80년대에 가족 모두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오셨다고 하는데…약간은 어눌하지만 열심히 한국말을 하시는데 참..반갑고, 뭔가 따뜻한 기운이 몽글몽글 느껴졌다.

<찐오리, 새우, 게, 토마토계란국, 김치, 디저트 빵등 상다리 부러짐>

<날 위해 자꾸 한국말을 쓰려고 하는 정중네 아저씨..따뜻히 환영해주심>


판진이라는 도시는 인구 100만밖에 안되는 도시로, 동북(东北)의 도시중 작지만 부유한 도시다. 바닷가 연안에 위치해 있고, 석유가 나기 때문에 주민들의 대부분이 넉넉하게 사는 편. 이제 막 큰 쇼핑 센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큰 도시인 대련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정부는 현재 젊은 예술가들을 고용해 휴식과 예술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의 색깔을 내려고 노력중이고, 전세계의 노인인구들을 이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도시 한복판에도 석유를 채굴하는 기계들이 위치해 있고, 바닷가 근처로 갈수록 채굴기가 많아진다 >


그리고, 난 판진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중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판진으로 불러 살게 하고, 도시 디자인,도시 인테리어 등을 하도록 장려한다는 것이다.


정중은 특히나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이 많고, 나중에 여유가 되면 예술가들에게 투자를 하고 싶댄다. 그래서 젊은 예술가들과 자주 교류하고, 초반에 이들이 판진이라는 도시에 정착했을 때 본인 돈 300만원 정도를 투자했다고 한다.


정중과 함께 갔었던 예술가들의 거리는 '新广厦艺术街(xin/guangsha/yishujie)’라는 곳이다.

판진 기차역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예술가들의 대부분은 판진 출신이 아니라 광둥, 사천, 신장 등 중국의 각 지역에서 이쪽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 했다.


독특했던 점은 - 이들의 이주와 정착을 돕는 것이 정부나 시가 아니라 한 개인 사업자라는 것. 거리 조성부터 시작해서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 모두 예술을 좋아하고 관심있는 한 ‘사업가’가 진행을 한다고 하니- 

또한 번 컬쳐쑈크..

<25세~30세 나이대의 예술가들이 예술의 거리에 모여 같이 일하고, 먹고, 논다>


<정중의 제안으로 맨 뒤의 조형물을 따라 포즈를 취해보기로 함. 세번째 만에 괜찮은 사진 건짐>


*베이징과 달랐던 점. 음식을 먹으러 갈때마다 더치페이를 하던 베이징 친구들과 달리, 음식이 적게 나오든 많이 나오던 간에 돌아가면서 밥을 산다. 떠나기 마지막 날 밤 밥 산 친구는 

그 작은 도시 식당에서 거의 12만원 넘게 냈다..(불쌍한 친구가트니)*



이들은 이렇게 3년전부터 판진이라는 작은 도시로 와 함께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산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사람을 직접 처음 봤다는데..영어는 잘 못해도 정말 순수하고 소박한 친구들 이었다. 여느 날 밤처럼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실에 모여 기타를 치고, 차를 마시며 소담을 나누었는데 - 화방의 주인이신 화가분은 한국여성의 나이에 감각이 없으신듯 했다. 나이를 맞춰 보라니깐 여덟살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지고 ‘열여덟살’이라며 자신있게 말하셨다. (이거 자랑임)

<이 젊은 친구들은 간디를 닮은 예술가의 작업실에 모여 늦게까지 차 마시며 수다를 떤다>


아아, 3박4일은 얼마나 느리고 더디게 갔던가.. 예상하지 못하게 판진이라는 3차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지만- 

빨아간 보리가 유명한 10월에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다음번에도 역시 베이징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전에 대련을 거쳐 들어올 예정이다. 정중이 하도 자랑을 해서 사진도 함께 투척한다~ 

<전세계 아름다운 풍경의 열손가락에 드는 곳 판진, 이 곳의 가을은 가슴 설레이도록 불긋불긋하다>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는 허허들판의 판진에서 풀샷 찰칵. 바람과 들판, 그리고 우리밖에 없었다>


어느날 훌쩍 나타난 의문의 한국인 친구를 따뜻하게 환영해준 판진 친구들이 벌써 그립다. 이렇게 대륙의 친구들은 중국 지방 어느 곳에서 하나하나 늘어간다 �



*다음 글은 2016년 4월경에 개인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옮긴 글입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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