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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is Mar 25. 2017

일기_170325

생리통을 극복하고 독서모임에 갈까 했는데 취소되었다고 하여 모임용으로 들고 간 디디-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을 스타벅스에서 읽었다.


환절기가 되어 비염 알러지가 심각해졌고, 참다 못해 찾아간 이비인후과 의사는 이렇게 관리를 안 하고 계속 살다간 곧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피부도 가려워지고 종국적으로는 천식이 올 것이라고 나를 협박했다. 나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에게 카드를 건네주고 처방전을 받았다. 아마 내게 옥장판을 팔았어도 샀을 것이다.


어느 날 밤에는 정말이지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기분이 들었고 누구에게든 전화를 해서 나를 찾아온 이 자명한 진리를 알려 주고 싶었으나 참고 가만히 눈을 감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다음 날이 되자 그 우울은 생리 전 증후군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깨달은 사실은 어렸을 때는 오히려 별것이 아니었던 알러지와 생리통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꼭 닮은 나의 아버지가 환절기를 견디는 모습을 보아도 비염이란 늙을수록 더 악화되도록 디자인된 질병임에 분명하다.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컨트 로이 배티가 제작되어 두 살이 되었을 위대한 2017년에 한갓 비염조차 극복되지 않는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20년 전 비염의 치료제를 찾았으나 생계 수단의 확보를 위해 프리메이슨에서 그걸 비공개로 부치기로 결의했다는 나만의 음모론을 믿는다.


배를 건져올렸다는 말을 들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어렸을 때는 무한의 시간이 있고 고통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진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는 작은 고통조차 세계의 종말처럼 크게 느꼈으나 또 아주 빠르게 괜찮아졌다. 말랑한 뼈를 지닌 아이들은 회복력이 있는 세계에 살았다. 그러나 이제 나아지지 않고 회복되지 않는 어떤 것의 존재는 오직 그것만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고통으로 남는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우리의 태생적인 결함, 우리의 불능과 무능, 우리의 실패, 우리의 빈 곳.


오늘 이사를 했다. 늘 그렇듯 짐이 너무 많고 머리가 너무 많이 길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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