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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is May 08. 2019

진실이 되는 여성의 삶에 관하여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는 자신이 확인했던, 혹은 확인하고 싶어했던 작은 진실들로 가득 찬 우주를 정확한 간격을 두고 끊임없이 도는 행성 같다. 그녀가 그리는 삶과 문학의 영역은 다소 미시적이다. 먼로는 대체로 여성들이 겪는 작은 삶의 궤적들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대체로 단편 규모의 이야기를 쓴다. 누군가는 그러한 우주를 '여성적'인 것이라 폄하할지 모르나, 그 작은 세게는 그 어떤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조차도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프랙탈과도 같은 형태의 문학적 진실들로 촘촘히 짜여 있다. 그녀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할 때조차도 그것은 다시 이야기될만한 가치를 지니고 돌아온다. 그 누구도 먼로가 평범한 주부의 삶이나 좌절하는 여성의 삶을 끊임없이 그린다고 하여 반여성주의적인 작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먼로는 일견 평범해보이는 여성들의 삶에 빛나는 생명력을 끊임없이 부여하는 작업을 하는 위대한 작가이다.


『거지 소녀』를 읽으면서 몇년 전 매우 사랑했던 책인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떠올렸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결국 대단한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문학을 향한 사랑으로 전진하는 학자의 삶을 산다. 허영과 환상으로 시작하여 처절하게 실패하는 결혼 생활과, 갈구하던 사랑은 존재했지만 지속될 수 없는 불륜 사건. 많은 실패를 거쳤으나 나름의 풍요로움을 품은 채 마침내 죽음에까지 도달한 그의 삶의 촘촘한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생각해본다. 『거지 소녀』의 로즈의 삶은 어떤가? 빈곤하고 가혹한 동네에서 자란 문학적이고 총명한 소녀 로즈는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지만, 부유한 남성의 구애에 응하여 실패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하고, 나름대로의 유명세를 지닌 직업을 가진 독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나간다. 하지만 그 삶은 겉보기처럼 화려하지도 충만하지도 않아서, 로즈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빈 공간을 의식하면서 새로운 애정을 찾아내고 또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스토너의 삶과 실패는 남성의 것이지만, 로즈의 삶과 실패는 여성의 것이기 때문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스토너의 삶과 달리, 로즈의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혹은, 그 삶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완성된다. 삶에 쏟는 그녀의 모든 노력은 일관성 있고 단단한 형태나 성취로는 수렴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계속해서 분열되는데, 그녀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분열시키며 떠돌기 때문이다. 로즈는 그것을 한데 주워 모으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먼로가 이 이야기를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의 경계에 있는 이야기들의 모음으로 만든 이유이리라.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는 연속되는 삶 같지만 독자가 기대하는 형태로는 연속되지 않는다. 그녀는 다음 이야기에서 정신적으로 대단히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전 이야기에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은 허무하게 모습을 감추곤 한다. 미완성을 향해 계속되는 이 삶은 완결이 없다. 그런 채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먼로가 그리는 복합적인, 그 날카로우면서도 질척거리는 강렬한 애정의 관계성에 대한 뛰어난 묘사. 이를테면 로즈와 계모 플로의 관계, 로즈와 아버지의 관계, 로즈와 첫 남편 패트릭의 관계는 관계를 위한 모든 시도와 암시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실패하는 속에서도 기이한 유대와 이해의 순간들을 품고 때때로 연결된다. 로즈가 느끼는 순간들에 대한 혼란스럽고 부정확한 뉘앙스의 언어들로부터 직조되는 삶에 대한 정확한 진술들. 로즈가 계속해서 남자의 사랑과 삶의 다른 희망을 찾으면서도 실패하고 또 예상치 못한 작은 성공을 거두기도 하는 여정 속에서는 시지프스의 신화와도 같은 그리스적으로 숭고하고 운명적이기까지 한 비극의 요소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비극들은 독자로 하여금 로즈를 연민하거나 한심하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로즈라는 한 여성의 삶을 더 잘 지켜보고 이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로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웨스트핸래티의 기이한 사람들에 대한 전설 같은 강렬한 삽화들은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서와 같은 문학적인 '그로테스크'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 혹은 챕터는 이 책의 마지막에 붙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이다. 이 책의 다른 작품들은 대체로 연대기적 구성에 가깝게 배열되어 있지만, 이 작품은 맨 처음에 그랬듯이 다시 로즈의 유년기의 기억으로 돌아가며, 동시에 나이 든 로즈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 마치 떠났다가 모험을 끝내고 다시 돌아오는 전형적인 영웅담처럼 말이다. 이 작품에는 유년기의 삽화와 시간이 지나 고향에 방문한 로즈의 삽화들이 뒤섞여 있다. 유년기의 기억에서는, 동네에서 기행을 일삼으면서도 모두의 승인을 받으며 존재하며, 동네의 아기들을 모두 축복하는 기묘한 광대 같은 '밀턴 호머'라는 지극히 문학적인 이름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 남자는 문학을 좋아하고 후에 광대-즉 배우의 길을 걷기도 하는 로즈의 삶과 묘하게 닿아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유년기의 친구인 랠프 길레스피는 밀턴 호머의 흉내를 잘 내던 소년이었으나, 해군에 입대했다가 부상을 입고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플로의 말에 따르면, 그는 밀턴 호머의 흉내를 너무 많이 낸 나머지 '밀턴 호머처럼 되어버려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못한 채로 고향에 돌아온 로즈는 우연히 랠프를 만나고, 그와의 짧은 대화는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밀턴 호머의 시대착오적이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분신으로서, 그리고 로즈의 친밀한 유년기의 기억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랠프와의 만남에서 로즈는 '우애와 공감과 용서'를 느끼고, 늘 자신의 삶에 대해 가졌던 수치심을 누그러뜨리게 된다. 랠프의 비중은 매우 적지만 그와의 만남은 로즈가 겪은 수많은 만남들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다. 그는 로즈가 이 소설 속에서 성인이 되어 유의미한 관계를 맺은 남성들 중 성애로 연결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남성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마치 로즈가 고향에 남겨 둔 그녀의 진짜 형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여성이 자신의 삶과 최종적으로 화해하기 위해 경유하는 대상이 어머니도 자녀도 아니고 다른 친밀한 여성이나 사랑하는 남성도 아닌, 유년기에 잠깐 알았던 남자라는 것은 여성이 주인공인 픽션에서는 다소 이상한 구도일 것이다. 그러나 먼로의 세계에서 그러한 이벤트는 설득력을 지닌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 온,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찰나의 순간 동안은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유대가 존재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먼로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로즈의 삶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치와 욕망과 고통과 연결의 순간들에서 그녀는 잠깐 삶의 본질을 일별하고 자신의 삶을 용납한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돌아온다. 고향으로, 과거로, 자신의 뿌리로, 자신의 한계로. 자기 자신으로. 결국 늘 실패하지만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 끈질긴 사람들의 진짜 삶처럼, 로즈는 산다. 우리는 도대체 로즈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제 그녀는 우리가 아는 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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