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감정적 고양이야말로 내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당신을 웃기거나 울리고 싶다...아니면 웃으면서 울게 하고 싶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당신의 심장을 원한다. 뭔가를 배우고 싶으면 소설을 읽을 게 아니라 학교에 가라.
-스티븐 킹, [L.T.의 애완동물 이론] 서문에서
시험 기간 동안 전자책으로 찔끔찔끔 할란 엘리슨과 스티븐 킹을 읽었다. 딴짓을 하고 싶을 때 한 편씩만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조금 많이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위 발췌문은 킹의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의 수록작 [L.T.의 애완동물 이론]의 서두에 붙어 있는 킹의 소개글이다. 이 단편은 코미디로 시작한다. L.T.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집을 떠난 자신의 아내 이야기를 농담처럼 꺼낸다. 자신이 아내에게 선물한 고양이를 아내가 얼마나 증오했는지, 아내가 자신에게 선물한 개를 자신이 얼마나 증오했는지를 시종일관 블랙 유머를 곁들여 회고한다. 그들 부부 사이에는 서로에게 잘못 선물한 애완동물들이 암시하는 균열의 조짐이 있고, 마침내 어느 날 아내는 개를 데리고 남편을 떠나버린다. 이 소설의 오싹한 후반부는 전반부와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관습적인 호러 소설의 반전으로는 절대 치닫지 않는다. 물론 스포일러는 말할 수 없다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소설의 여성 캐릭터에게 닥친 끔찍한 일을 암시하면서 결코 독자들이 그걸 읽는 동안 가벼운 흥분과 재미를 느끼고 곧 편히 잊어버릴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일들을 우리가 정말로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소름끼쳐하도록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정말로 그런 일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게 만든다(물론, 그런 일들은 세상에 존재한다. 주위를 둘러보라).
킹의 애독자라고 말하기에는 별로 읽은 것이 없지만, 그는 적어도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는 여성혐오적 범죄를 아주 진지하고도 빈번하게 다루는 작가 중 한 사람이며, 동시에 전무후무한 여성 악역 캐릭터들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이건 킹의 장편을 [돌로레스 클레이본]으로부터 시작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상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크 타워]시리즈는 읽다 말았다). 킹은 자신이 장르 작가 이상의 존재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 외에 별달리 고상하거나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믿지도 않지만, 남자들에게 죽고 강간당한 여자들이 넘쳐나게 등장하는 잔혹하고도 훌륭한 최근의 단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의 후기에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등장인물들은 아예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의 가장 간절한 희망조차도(그리고 우리가 동료 시민들에게, 또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하여 품고 있는 가장 간절한 소망조차도) 때로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런 경우는 빈번하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싶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깃드는 것이며...우리가 그 노력을 다하지 않을 때, 또는 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 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정말이지 그는 독자의 심장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 그리고 어쨌든 난 그의 소설에서 뭔가를 배우긴 했다. 작가가 뭐라고 말하건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