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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rain Oct 04. 2016

그날의 비는 무지개였다

비 오던 새벽과 오늘의 무지개  

비 오던 새벽


그는 참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공원이나 놀이터에 앉아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은 조용한 시간을 좋아하곤 했다. 우리의 시간은 둘 중 하나였다. 조용히 둘이 함께 있음을 느끼거나 내가 말을 하거나. 어떤 날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면 목이 쉬어있곤 했다. 

그래도 그를 만나면서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서로를 느끼기에 참 좋은 시간이구나 하는 것과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평화를 느끼는 게 진짜 좋은 관계구나를 배웠다. 


문제는 평소에도 말이 없는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더 말이 없어진다는 거다. 

우리는 다퉜고, 나는 화가 났었다. 지금이야 화가 나면 이래서 이래서 화가 났고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명확히 말을 하게 됐지만 그 당시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화가 나면 입을 다물어버리고 대화를 차단해버리곤 했다. 

그는 끊임없이 연락했고 전화를 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미안해 한마디면 되는데 그는 전화를 해서 여보세요 하고 나면 응. 한마디 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화가 났다. 내가 화가 난 상황에서도 나는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나. 미안하다 한마디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전혀 미안하지가 않아서 이러는 건가. 아무 말 안 할 거면 대체 왜 전화를 했나.


저녁부터 그다음 날 저녁까지 그렇게 아무 말하지 않는 그의 전화를 받고 끊기를 네다섯 번 반복하고 결국 그는 집 앞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잠깐 보자고 했다. 그와 마주한 차 안에서 그는 또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기어이 내가 '이럴 거면 왜 나오래. 할 말도 없으면서.'라고 먼저 화를 냈고 참고 참던 그 역시 기어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래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 

그 많은 시간과 침묵 속에 내가 기다리던 그의 미안하다 한마디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옛다 먹어라 식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과했지만 나는 그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그를 차단하고 하루를 보냈다. 그가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나 또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전날 소리 지른 것이 또 미안했던 모양이다. 원래 싸운 상태로 두 시간 이상을 못 견디는 내가 지쳐 먼저 말했다. 

' 대체 왜 이러는데. 미안하다 한마디면 되는걸. 그냥 선택해. 1번 미안하다. 2번 안 미안하다. 3번 아무 생각이 없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1번......... 


그와 헤어진건 이 사건이 있고 한참 뒤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이미 이 순간 끝났다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다. 




오늘의 무지개


나와 헤어지고 6개월 뒤,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나와 만나면서도 늘 결혼하자고 노래를 부르던 그였기에 이른 결혼 소식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는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소식지에서 그와 그의 아내의 인터뷰를 발견했다. 나는 그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들의 인터뷰로 내 삶이 뒤집어졌다.


나는 그의 침묵이 죽도록 싫었다. 싸웠을 때 미안하다 한마디 하지 않아 내도록 나를 괴롭히는 것도 싫었고 이전에는  평온하다 느끼던 그 잠잠한 시간들 조차 다툼 이후에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시간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상하리만치 말이 없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내 기준에는 그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침묵은 사람을 대하는 잘못된 방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화가 났을 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는 가만히 들어줘요.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1톤짜리 망치로 머리를 쿵하고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10분 정도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좋던 그를, 한 순간에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단점으로 변하게 했던 그의 침묵이 그녀에게는 최고의 장점으로 보였구나. 왜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장점으로 봐주지 못했을까.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사람이 틀린 게 아니라, 우리는 다른 거구나. 


우리는 늘 무지개를 찾는다. 비가 그치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특별한 무언가. 

그런데 무지개는 지나가던 분수에서도 볼 수 있고 계단을 걷다가도 나타나고 유리창에 비춰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실 무지개는 늘 공기의 형태로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다. 

결국 무지개는 무지개를 알아보는 사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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