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계절과 두 번째 감기
첫 번째 계절
그를 만날 즈음의 나는 몇 번의 썸과 실패를 거치면서 20대 때와는 사뭇 다른 남자들의 태도를 보며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연애 상대로 보이기엔 너무 많은 나이구나'를 모든 세포로 느끼고 있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하던 상황에 당황하며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던, 그렇게 자존감은 바닥을 치던 그런 시기였다.
그때 그를 만났다.
나보다 5살이나 어린 그는 나를 보며 예쁘다했고, 사랑스럽다했으며, 이런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자기는 나이가 있는 성숙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고, 내가 가진 것 중에 내 나이가 제일 좋다고 했다.
누군가의 이상형이 된다는 건, 더없이 행복한 일이었고 내 나이가 좋다는 그의 한마디는 그 시절의 나를 더 절박하게 만들었다. 그를 놓치면 나에겐 다음은 없을 것 같았다.
불안했다. 이 남자 아니면 또 고백하는 사람이 없을까 봐. 내 나이가 이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봐.
나의 불안은 그를 서둘러 잡게 했고, 충분한 마음을 볼 새 없이 그의 소소한 고백에 설레고 넘어가게 했다.
그 사람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만나면서 보여준 사소한 행동들이 그의 마음을 투영한 진짜이길 바랬다.
그러나 그 믿음조차도 결국은 불안으로 변해갔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그의 마음이란 건, 내가 바래서 본거지 그가 진짜 보여준 게 아니니까.
어리석게도 끊임없이 확인하려 했다. 그의 마음이 진심인 건가, 정말 내가 좋아서 이러는 건가. 끊임없이 확인하고 불안해하고 그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이미 낮아진 자존감은 내 관계를 멍들게 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안 좋은 경험들이 나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가장 안 좋은 건 그동안 쌓인 안 좋은 경험에 나를 잃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감기
만나는 동안 그는 어렸고, 이기적이었으며, 20대였다.
그는 여러 상황 속에서 나를 배려하는 척했지만 모든 선택은 자기중심적이었고 심지어 함께한 약속마저도 일방적으로 어기고 자신의 선택을 통보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참아야 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땐 그래야 했다.
그는 내가 성숙해서 좋았고, 나는 그가 아니면 다음은 없을 거라는 묘한 절박감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숙해야만 했고 이해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미안해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모든 행동이 너무 당연한 듯 여겼다.
그때 알았다. 그는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구나.
연애하면서 가장 슬픈 순간은 그는 나를 잃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