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감기 그리고 회복기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건방지게.
세 번째 감기
마지막에 나는 그의 그 어떤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의 집 근처까지 간 나를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이유로 돌려보냈고, 모든 걸 이해하려 혼자 애쓰던 내가 터져버렸을 땐, 나를 차단한 채 혼자만의 평화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연결된 전화에서 나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다.
아니, 하고 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일 수도 있다.
메모장 한편에 저장해뒀던 한 마디........
넌 날 위해 아무 노력도 안 했어. 니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니 사랑만으로 날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면 애초에 니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건방지게.
회복기
헤어진 이후, 그는 간간히 카톡을 보내왔다.
업무 성과로 칭찬받고 싶은 날, 자랑하고 싶은 날, 누군가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고 싶은 날.
그의 곁에 있는 게 불행해서 떠나왔음에도 그처럼 내 나이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지워지지 않는 불안에 연락이 올 때마다 흔들렸다.
그렇게 몇 번을 이어진 그의 일방적 대화와 연락에 지금의 나는 그저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구나를 깨닫고 그의 이기적 관계는 절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연락처를 지우고 그와의 연락을 끊어냈다.
다행히 이후에도 서른세 살, 서른네 살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회복해가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카톡 하나가 와 있었다. 세벽 네시쯤 그 사람이었다.
간만에 전화할라 그랬는데 번호가 없네. 아쉽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전화가 안 와서 다행이다'였고
그다음엔 '난 전혀 아쉽지 않은데 혼자 왜 이럴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였다.
나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면서 통보를 하는 그가 싫었고 그게 예의 없는 행동인지 모르는 그가 싫었다. 서운해하는 혹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나에게 자신도 소중한 것이 있다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그의 이기심이 싫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본인이 힘든 시간 혹은 칭찬받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연락하는 그가 싫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번호를 지워놓고 당당하게 아쉽다고 말하는, 그 새벽에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쉽다고 말하는 그의 이기심이 역시나, 계속, 쭉 싫다.
그는 내가 자기를 왜 싫어하게 됐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겨우 나이에 치여 내가 나를 아끼지 못하고 예뻐해 주지 못했던, 그래서 엉뚱한 곳에서 사랑을 구걸하며 그게 사랑이라 굳세게 믿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미안했으며 모든 불안이 그대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그 상황을 벗어난 나를 더 예뻐해주고 싶던 그런 아침이었다.
오늘 이 작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