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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im Apr 28. 2019

"Nostalgia, ULTRA"

미주 운전 일지 #3

 직장 동료의 남편은 고등학생 때부터 소유했던 낡은 혼다 시빅을 시간이 날 때마다 세차하며 보살피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30대 후반인 현재는 아기 카시트가 3개는 넉넉히 들어갈 듯한 신형 SUV를 몰고 출퇴근을 하지만, 그 오래된 혼다 시빅은 아마 절대 처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운전을 하고 살면서 내가 가장 재밌게 여겼던 점은, 요란하게 튜닝된 차나 마세라티와 테슬라 같은 럭셔리 차들을 자주 본다는 점이 아니라, 내가 어릴 적 뉴욕에서 탔던 아빠의 차와 비슷한 연배는 아닐까 싶은 오래된 차들을 아직도 길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차는 약간 붉은 갈색 차체에 레버를 돌려 창문을 내리는, 90년대 초에도 꽤 낡은 중고차로 기억한다. 엄마와 아빠는 그 차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차 때문에 길 한복판에서 난리통이 났었던 추억 아닌 추억들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시대에 함께 생산된 차, 모든 것이 첨단을 걷는 거리와 크게 이질감이 없는 차만 보았던 것 같다. 미국의 길에서는 왜 아직도 오래된 차가 많을까 궁금했다.


 미국 교통의 역사는 차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길 또한 사람의 보폭보다는 차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그 대표적인 도시가 엘에이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운전은 사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스킬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독립성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 때부터 운전을 할 권리가 주어져,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 듯이 자연스럽게 운전을 배운다. 갓 면허를 딴 막내가 집에서 가장 낡은 차를 물려받는 대물림은 여느 미국 가정의 가장 평범한 순리이다. 이렇듯, 대중교통이 잘 발달하지 않은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차가 어떤 능력의 상징이기 전에, 가장 기본적이고 실용적인 교통수단, 온 가족이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각자가 하나씩 소유해야 하는 필수품일 뿐이다. 미국 도로에 아직도 옛날 모델의 차가 많은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자신의 오래된 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릿한 그리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청소년기와 20대를 함께한 물건이나 기록에서는 다른 시대의 것과는 다른, 조금 더 특별한 미련이 남는다. 그중에서도 차라는 공간이 젊음에 선사하는 낭만은 무한할 것이다. 먼 곳으로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고, 비밀스러운 만남과 가장 솔직한 대화가 오가는 곳이자, 나의 음악을 숨김없이 들을 수 있는 공간. 집 밖에서 집을 대신하는 존재이자, 내가 내 길을 주도하고 있는 듯한 용감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이 공간.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차란, 그저 과시용이나 실용성에 입각한 교통수단을 초월하는, 숭고한 추억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지 싶다.




 보통의 미국 사람보다 운전을 느지막이 배운 나의 첫 차는 2002년형 기아 스포티지였다. 언니가 시애틀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서 급하게 3000불을 주고 샀던 그 차의 앞 유리는 총알이라도 맞은 듯 부서지기 직전으로 금이 가 있었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모습에다가 오른쪽 문은 특정한 방식대로 당겨 닫지 않으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밤 중에 아무 이유 없이 경보 알람을 울려댔고, 툭하면 엔진 경고들이 켜져 걸핏하면 500불에 달하는 수리비가 들었다. 내가 첫 회사에 그 차를 타고 출근을 했을 때, 사람들은 2015년도에 "세계 최초의 SUV"를 탄다며 놀리기도 했었다. 18만 마일 정도의 마일리지에 다다르고서야 차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중고차 매매상에 차의 견적을 받으러 갔을 때 내 차가 실은 Salvage title 차량이라는 것을 알았다. Salvage title 차량이란 대형 사고 기록을 가지고 있는 차로, 중고 매매상에게도 가치가 없는 차라고 했다. 그냥 폐차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아저씨 뒤로 다 늙은 나의 스포티지가 꼭 본인 험담을 엿듣고 있는 사람처럼 처량하고 안쓰럽게 서있었다. 차 속에 놓고 온 게 없는지 가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해보라는 아저씨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나는 새로 살 차의 가격을 300불 정도 깎는 조건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포티지를 그곳에 두고 나왔다.

 생각해보니 그 차는 내게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야만적인 운전 연습에 기꺼이 희생양이 되어주기도 했고, 시애틀에서 엘에이로 이사 가는 큰 결정(1135마일에 달하는 그 긴 로드트립)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첫 직장의 인터뷰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오고 나서야 딱 배터리가 방전되었었던 걸 보면, 중요한 타이밍은 나름 눈치 있게 맞춰가면서 고장 나는 아이였다. 내가 성인으로 자립하는 법을 배우는 지점에는 이 스포티지가 함께 있었다.

 요즘도 지나가는 신형 기아 스포티지들을 보면 그 아이도 누군가에게 큰 설렘을 주는 신차였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거치면서 만난 마지막 주인이 나처럼 매몰찬 주인이었다니. 잘 찍어놓은 사진 한 장 없다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렇게 해서 새로 바꾼 차는 2013년형 중고 도요타 코롤라였다. 별다른 재미요소는 없는 평범한 차였지만, 첫 회사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산 나의 재산 목록 1호로, 내게 번듯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전에 스포티지를 매일 타고 출퇴근하며 느꼈던 불안감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이 차는 내게 큰 행복을 주었다. 이 차를 사고 나서야 조슈아트리, 요세미티, 세쿼이아 국립공원 등 로드트립 여행도 본격적으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해졌다. 이제 운전도 좀 잘하는 것 같은데 더 크고 좋은 차를 타고 싶다고 자만하기 시작할 때쯤, 출근길 고속도로에서 픽업트럭에 크게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멀쩡했던 픽업트럭에 반해 내 차는 에어백이 다 터지고 본넷과 엔진이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종이짝처럼 구겨진 차를 보고 처음 든 기분은 사고에 대한 아찔함과 왠지 모를 실망스러움이었다.


 Mercedes들은 트레일러하고 사고가 나도 차체가 끄떡없다는데, 이 차는 역시 깡통이었어. 


 내가 사고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주며 코롤라에 대한 실망감을 이야기하자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But it held up and protected you. That's all it needed to do.


 그렇다. 나는 이 차가 내게 선사했던 마음의 안정과 데려다주었던 모든 여행을 잊을 채, 그가 가진 평범함을 지루해했고, 내 실수 때문에 한 순간에 험악한 몰골이 된 것까지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이 차는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다치지 않도록 나를 보호함으로써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내게 선물하고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내겐 충분히 소중한 차로 기억될 것이다.

 



Frank Ocean의 믹스테이프 Nostalgia, ULTRA. 추억 울트라다.


 "How much of my life has happened inside of a car? I wonder if the odds are that I’ll die in one. Knock on wood-grain. Shouldn’t speak like that. We live in cars in some cities, commuting across space either for our livelihood, or devouring fossil fuels for joy. It’s close to as much time as we spend in our beds, more for some."


 이는 힙합 아티스트 Frank Ocean이 한 에세이에 쓴 말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인생다운 순간들은 차 안에 있을 때 일어났으니, 본인의 마지막 또한 차 속에서가 아닐까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과거에 탔던 차를 통해 풀어내기를 좋아한다. 그의 섬세하고 영롱한 음악에는 항상 다양한 차가 등장한다. 보통의 힙합 아티스트들이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차를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차를 떠올린다. 금전적인 이유가 대부분이겠지만, 직장 동료의 남편처럼 많은 미국 사람들이 자신의 오래된 차를 세월이 지나도 돌봐주며, 가끔은 몰고 나가 바람도 쐬주는 것은 이런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주말에 뉴포트에서 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돌고래처럼 빛나는 피부를 가진 1960년대 빈티지 자동차를 타고 태평양 해안 고속도로인 PCH를 달리고 있었다. 아마 그 차는 정말로 오랜 세월 동안 예쁘게 아껴주며 탄 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젊은 시절에 정말 갖고 싶었던 차를 나이가 든 후 중고로 구입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추억을 담은 차가 아름다운 주말, 햇빛을 받으며 찬란한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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