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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선형적 사고의 종말?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찾은 생각의 틈 '不二問(불이문)'

‘라떼는 말이야’ 유행어와 트렌드코리아 간의 공통점은?

라떼는 말이야 ‘는 2019년 모생명 보험회사 TV 광고 카피입니다.. 출시 2주도 되지 않아 200만 조회를 돌파하면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가 '나 때는 말이야'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언어유희를 활용한 이 문구입니다. 트렌드코리아는 2009년 최초 발간 이후 매년 한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특히 전반적인 출판시장 불황 속에서도 15년 넘게 꾸준한 판매고를 기록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와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보여주는
선형적 사고라는 공통분모.

'라떼는 말이야'는 기성세대가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도 절대적 진리처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선형적 사고방식을 보여줍니다.

트렌드코리아 역시 과거의 소비 트렌드 분석을 통해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선형적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패턴이 미래에도 유사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 역시도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살펴보는 독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 1년 단위로 트렌드를 전망하게 되었을까? 정말로 연구진 주장대로 1년 단위로 변화가 생기고 세상이 변화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지난 3년간 트렌드코리아에서 발표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트렌드코리아 발행된 콘텐츠 중에서 60%(개인적인 의견)는 전년도 변화에 대한 일종의 리뷰이고 나머지 40%가 앞으로 생길 변화에 대한 예측입니다.

트렌트코리아 키워드분석.jpg 21년~ 23년 트렌드 코리아 키워드 분석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의 기준을 1년을 고정된다는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트렌드를 읽는 습관(좋은 습관 연구소)’는 트렌드는 매년 조금씩 모습을 바꾸긴 하지만 3-5년에 이르는 큰 흐름을 말하는 것이 트렌드의 진실이라고 합니다. 트렌드가 특정 기간을 시점으로 바뀐 게 아니라 트렌드의 맥락이 서서히 조정된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시간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생각이 선형적 사고입니다. 선형적 인식은 자연현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인간은 봄부터 겨울까지의 순환과정, 즉 발아에서 개화, 결실, 낙엽, 적설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순차적으로 변화하는 자연현상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선형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선형성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인간의 인지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인과관계를 선호하며, 이는 복잡한 현상도 단순한 선형관계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라떼는 말이야'와 트렌드코리아 간의 공통점을 해석한 겁니다. 두 현상 모두 인간의 뇌가 선호하는 단순 인과관계적 사고, 즉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 인식 체계를 반영하고 있는 점입니다.


선형적 사고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 복잡한 인간관계 문제 등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단점으로 인해서 과학계, 예술계, 학계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형적 사고를 구시대의 산물로 여기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선형적 사고로 전환해야만 된다고 주장합니다. 생각의 틈 2호 주제도 처음에는 선형적 사고는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TV 드라마를 보면서 이러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선형적 사고를 단순히 폐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비선형적 사고와 함께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할 도구로 보게 된 것입니다.


’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찾은 생각의 틈 ; 不二問(불이문)


SBS ‘나의 완벽한 비서’는 강지윤 성공한 CEO(한지민 분)과 싱글 대디 유은호(이준혁 분)의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 충돌이 해소되는 로맨스 이야기입니다. 첫 장면에서 둘이 처음 만나고 산사에서 내려오는 데 강지윤이 유은호에게 다시 보지 말자고 하는 장면에서 현판에 적힌 不二問(불이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극 중 대사에서는 '서로 다시 보지 말자'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좀 더 알아보니 不二問(불이문)은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라는 뜻입니다.


둘이 각각 이 문을 통해 산사로 들어왔으나 다시 내려갈 땐 인연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치로 그 현판 앞의 둘을 배치해서 보여준 듯. 강지윤과 유은호는 이제 별개의 둘이 아니라, 하나의 인연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살짝 암시한 것입니다.

나의 완벽한 비서 1회 차 '불이문' (출처: 터져 영상 스틸컷) https://programs.sbs.co.kr/drama/lovescout/clip/84262/OC

드라마 속 한 장면은 선형적 or 비선형적 사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강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결해 주었습니다. 선형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상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현상들은 대부분 비선형적으로 인식됩니다. 이렇게 비선형적으로 인식된 내용을 우리는 이해하기 쉽도록 선형적인 흐름으로 정리하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선형적 사고의 본질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선형적 사고와 비선형적 사고를 대립적이어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잘못된 믿음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겁니다. 저 역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인식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깨고, 두 관점이 서로를 보완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해서 해석하는 과정에 둘 다 필요합니다. 선형성이 없다면 그 반대 개념인 비선형성도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틀 안에서 상호보완적입니다. 不二問(불이문)을 제 방식대로 다시 해석해 보았습니다. 선형적, 비선형적은 따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존재할 적에 위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선형적 사고 종말이 아니라
비선형적 사고로의 연결이다.
선형 비선형은 상호 대척점 분리가 아닌 연결과정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생각의 틈을 넓혀집니다.

생각의 틈 시작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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