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루리본, 그리고 나의 선택
코칭룸에서 만나는 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종종 제게 묻습니다. "어떤 기업이 더 좋을까요? 저한테 어떤 직무가 더 맞아 보이세요?" 기업 대표들 역시 질문합니다.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까요? 이게 될까요?"
언뜻 보면 제 고객들은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코칭 경험이 쌓일수록 분명히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선택을 위임하고 싶어 하는구나...'
처음에는 이러한 모습이 의아했지만, 어느 날 저녁 넷플릭스의 추천 리스트를 무한히 살펴보는 저 자신을 발견하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 또한 다르지 않구나...' 큰맘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려 했지만, 수많은 추천 목록을 보며 '최적'의 선택을 하느라 지쳐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TV를 끄는 제 모습이 보통이었습니다.블루리본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이곳이 정말 최고의 맛집일까?" 고민하지만, 결국 블루리본이 인증한 곳이라면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정말 더 많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더 많은 선택지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 좁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역사적으로 인류는 계속해서 선택의 자유를 확장해왔습니다. 선택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고,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요. 한번 살펴 볼까요?
고대 사회에서는 신분과 계급이 개인의 선택을 결정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경로가 정해졌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피하려 했고, 신탁이나 점성술과 같은 초자연적 권위에 의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즉, 선택의 부담을 신에게 전가하는 방식이었던 것이죠.
중세 시대에는 종교와 사회적 규범이 선택을 통제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신분제는 개개인의 결정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졌고,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일부 사람들은 더 많은 선택을 갈망했습니다. 상업이 발전하면서 일부 계층은 자신의 직업과 삶의 방식에 대한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되었고, 이는 점진적으로 선택권의 확장을 가져왔습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과 개별적 자유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과 함께, 인간의 개별적 사고와 선택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소비자 중심의 경제 구조가 자리 잡았고, 개인은 점점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파리의 봉 마르셰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처음으로 '선택의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한 곳에서 골라보세요"라는 제안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죠.
20세기 후반, 인터넷의 등장은 선택의 자유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킨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무한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순수한 의미의 '선택의 자유'처럼 보였죠.
하지만 여기서 역설이 시작됩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천 시스템이었지만, 점차 더 정교해지면서 우리의 선택을 은밀하게 유도하기 시작했죠. 넷플릭스는 우리의 시청 기록을 분석해 다음에 볼 콘텐츠를 추천하고, 페이스북은 우리의 취향에 맞는 게시물을 선별해 보여주며, 구글은 검색 결과를 개인화합니다.
선택의 자유를 쟁취해 온 우리는 표면적으로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요? 우리의 선택은 점점 더 알고리즘이 설계한 좁은 통로로 수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거에는 우리의 선택을 통제한 것이 신분과 종교였다면, 이제는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우리의 선택을 대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큐레이션된 선택'을 편안해합니다. 마치 제가 만나는 내담자들이 "당신이 결정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그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일까요?
선택 앞에서의 인간의 불안을 일찌감치 이해했던 장 폴 사르트르는 그래서 무한한 선택지 앞에서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이 불안을 '현기증'에 비유했습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하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과 고민 속에서 우리는 종종 검증된 경로를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모습은 코치로서 저의 역할과도 연결됩니다. 코칭룸에서 선택의 순간을 망설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그 결정을 위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코치로서 저는 매번 고민합니다. 진정한 코칭이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돕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일까?
이 고민을 기업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으로 확장해 보면, 기업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더 정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비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까?'
코치로서, 그리고 사람들의 선택을 설계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우리는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선택을 두려워하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필요할 때 선택을 위임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하지만 동시에,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코칭이 그렇듯이, 비즈니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코치로서의 고민에 앞서 저 자신부터 ‘나는 진정으로 선택의 주체가 되고 있는가?’'선택의 불안을 견뎌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추천 비디오 : '더 소셜 딜레마, the social dilemma'
선택의 자유 앞에 높인 우리가 어떻게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선택당하고 있는지를 엿 볼수 있는 다큐영화. 넷플릭스에서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