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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포토크 Jan 19. 2022

습작의 기억 2

콘셉트

그해 여름 산책을 멈췄다. 대신 작은방에 놓인 오크색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밤새 마감하던 공간이 커피가 있는 온기 가득한 습작실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낮 동안의 방 풍경과 정적이 퍽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다가 테이블에 스며드는 빛의 움직임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랫집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반복되는 피아노 소리에 예민해졌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빛과 소리가 공간의 정체성이 되어있었다. 그 공간에서 글을 쓰며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이 우연이나 필연처럼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천천히 겹겹이 쌓이는 시간 속에서 만나는 어떤 지점이, 다 지워내고 난 맨 얼굴이, 용기처럼 다가와야 하는 거였다.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지난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제일 좋아하고 왜 해야만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 깊게 생각할 여유 없이 살아온 인생이기에 그랬다. 산책이 끝나고 빛의 농도가 짙어지던 계절에 그 순간과도 글이 오기를 고대했다.


소설을 쓰려던 건 아니었다. 소설은 소설가가 쓰는 거지 나 같은 아무나가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안의 말들을 하나둘 꺼내다가 ‘이러면 어떨까?’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가상의 이야기로 풀어보면 괜찮겠다 싶었다. 습작에 대한 무지함이 공식이나 절차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터져 나와 어? 하는 순간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게 또 오! 나름 신세계처럼 느껴져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독자가 없어서 자유로웠다. 누가 볼 걸 염두에 두지 않는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가. 언젠가부터 쓰지 않게 된 일기를 제외하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소설이지만 인터뷰 형식을 차용했다. 그리고 가장 기본 전제는 나와 마주하는 글일 것. 글을 쓰기 시작한 날부터 머릿속에 질문들로 가득 찼다. ‘나’라는 화자가 여러 사람으로 분한 또 다른 나와 인터뷰한다면? 그 화자가 특별한 공감 능력을 갖고 있는데 어떠한 계기로 얻게 된 거라면? 그 공감 능력을 비교할 기회가 생긴다면? 서바이벌이나 쇼 형태는 어떨까? 공감 능력을 비교할 수 있고 그것이 특별한 능력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 화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형태의 것이어야 할까? 화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질문은 점점 구체적인 색채를 띄었고 그 질문들을 따라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렇게 이야기의 콘셉트가 생겼다. 인터뷰로 자신의 과거와 얽힌 상처를 조금씩 극복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 내가 원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감정이 닿고 생각이 옮아가는 대화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과도 맞닿아 있을 터였다. 소설의 제목은 <라포 토크>. 나의 첫 소설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서바이벌 형식의 인터뷰에서 각자 다른 질문을 내게 던졌는데 한 인터뷰이와의 대화 일부와 그가 보낸 메일 내용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제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자기만족으로 자신 있게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외면하고 소통하길 거부한다면, 전시는 무의미한 것이 돼버려요.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작품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요. 기자님도 대화할 때 그렇지 않나요? 인터뷰가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일방적인 것 같아도 실은 원하는 정보와 진실들을 끌어내기 위해 대화하는 거라고 봐요. 쌍방향 소통인 거죠. 공감이 만들어낸 소통.”


“맞아요.”


“저는 그 공감 포인트,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진정성에 있다고 봐요. 진정성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결국 모두 수긍하게 되는 지점도 생기잖아요. 같은 방에 둔 시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똑같이 움직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진정성 있는 소통이 공감을 얻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네요? 매체에도 해당하는 말 같아요. 새겨듣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완성된 결과물 말고 영감의 순간에 끼적인 글이나 아이디어 메모, 음성 파일 뭐든 주실 수 있을까요? 결과물이 되기 전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흠… 좀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음성 파일은 너무 개인적이어서 드릴 수 없고 글로 끼적인 것들은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그럼요.”


“기자 일이 잘 맞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나요? 그건 굉장히 중요해요. 자신을 아는 거요. 인터뷰하다 문득 궁금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고 있는 이 사람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지.”


마지막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찝찝한 여운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회사로 향했다. 사흘 뒤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메일에는 오래전 영감을 찾아 전국의 산을 헤집고 다닐 때 쓴 글이라는 메모와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므로 참고만 해달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그의 글은 평소와는 다른 문체로 쓰여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쓴 글이었다.


굽이굽이 풀 덮인 돌길, 흙길을 걸어 정상에 올랐어.

때마침 부는 산바람이 흘린 땀을 식혀주었지.

너럭바위에 앉아 햇살의 품에 안겨 있자니 눈꺼풀이 무거워지더군.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고 나른했어.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풀벌레가 잠시 눈을 붙이라고 재촉했어.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했지.

바람에 풀이 ‘싸르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풀벌레가 첫 소절을 끝내기도 전에 잠이 들었어.


오랜만의 단잠이었어.

세상이 저만치 떨어져 나가고 귓속을 채운 소리들이 멀어지자 풍경이 한 폭에 담겼어.

산, 들, 풀벌레, 나비, 바람, 계곡, 나무, 햇살의 온기를 가득 머금은 세상이 펼쳐졌지.

한낮의 빛이 아지랑이처럼 춤추며 피어올랐어.

아름다운 광경에 숨소리마저 낮추게 되더군.

완벽히 조화를 이룬 곳에서 나만 이방인이었어.


그때 옆에 있던 나무가 고개를 낮추며 말했어.

‘너의 노래를 들려줘.’

‘나의 노래?’

‘응.’

내 안에 숨어있던 음들이 흘러나왔어.

나조차도 예상 못 한 일이었지.

잠잠히 듣던 소리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가 되었어.


소리가 불러온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아 산기슭 어딘가로 데려갔어.

그곳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자연의 태곳적 신비가 놓여 있었지.

바람이 귀에 대고 속삭였어.

‘우리는 신이 만든 작품이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바람이 사라지고 나서도 그 말은 한참 동안 주위에 머물렀어.

서 있던 땅과 하늘이 같은 색으로 어두워져 마침내 서로의 품을 내준 순간까지도.



실제로 진행했던 과거 인터뷰에서 영감을 받고 쓴 대목이었다. 작은방 오크색 테이블에 앉아 한 계절을 보냈다. 빛이 기울었다가 사라지고 공간을 채우던 정적이 소리를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 사이, 소설은 자신의 말들로 채워졌다. 매일 같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오후의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분량이 되기까지 그것은 계속 반복되는 중이었다. 빛, 계절, 감정은 변했지만 해가 기울고 방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어김없이 종소리가 들렸다. 집 근처에 있는 절에서 나는 소리였다. 하루는 남편과 산책 삼아 절 입구까지 가본 적도 있었다. 상상한 것과 다른 모습에 서둘러 발길을 돌려 내려왔지만… 기대했던 편안한 기와 문과 고즈넉한 숲에 둘러싸인 작은 절은 그곳에 없었다. 이후에도 종소리가 종종 들렸지만 이전과 같지는 않았다. 종소리를 점점 못 듣는 날이 많아졌고 어느 순간 울린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종소리가 사라지고 처음 의도와 달리 소설은 하릴없이 길어져 수정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습작물이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그 무렵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한 말은 어떤 모습이든 무슨 일을 하든 그 어떤 것이든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는 거였다. 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어떤 걸 깨달았나? 굳이 표현하자면 그건 아마도 치유와 회복일 것이다. 그 계절, 나는 글 속의 나를 통해 위안받고 격려받았다. 소설 속 나는 고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으며 멋지게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그렇게 여름이 올 무렵 시작된 글은 가을이 끝나가는 시점, 그러니까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간간이 소설을 떠올렸으나 습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 작법에 관심이 생겨 새로운 소설과 만날 기회만 엿보았고 지나간 것은 급하게 잊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프리랜서로, 육아맘으로, 다른 공간에서 여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습작 중인 현재, 과거에 멈춰있던 <라포 토크>를 5년 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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