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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Feb 25. 2024

결핍에 대한 소고


1.

가정이라는 최소 규모의 집단에서는 부족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부분이, 새로운 무리에 소속되면서 ‘다름’이 부족함으로 여겨지는 경험을 시작한다.


‘얘는 이게 있네, 쟤는 이게 있네, 나는 왜 없지?’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외부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시간이 누적되면서, 부지불식간에 ‘상대적 부족’은 결핍으로 탈바꿈된다.


2.

그래서 스스로 결핍을 채우려 시도가 대개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도, 애당초 내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관념’이 문제일 뿐, 절대적 부족 상태가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자신의 ‘상대적 과분함’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부족함에만 매몰된다.


3.

이따금, 결핍은 타인에 의해 치유되는 부분이라고도 느껴진다. 왜냐하면 절대적 부족이 아닌 것을 머리로 알더라도, 자신의 결핍을 떨쳐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아닌 제3자로부터 ‘그것이 부족하지 않다 ‘고 확신을 받거나, 자신이 결핍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 그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자신의 결핍을 자식을 통해 채우려는 것이라 생각한다.)


4.

결핍은 애써 감추려고 해도, 마치 앞니에 낀 김가루와 같이 입을 여는 순간 드러난다. 그래서 결핍을 애써 감추기보다 차라리 먼저 드러내는 편이 낫다. 결핍을 담담하게 대화 사이에 툭.. 하고 끼워 넣는다거나, 자조성 발언으로 승화시키는 쪽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어차피 누가 봐도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부분 위에 얄팍한 천 쪼가리 하나 덮어씌워, 급급하게 감추려고 하는 것은 티 나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

결핍을 끝끝내 숨기며 살아가면, 결국 내면이 곪아 가며 의뭉스러운 인간이 되고 만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결핍을 건드리는 부분으로 연결되면, 어색하게 대화 화제를 돌린다거나, 뭔가 숨기려는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그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한다.


6.

그래서 결핍을 너무 늦지 않게 드러내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다. 사실 결핍은 그 퀴퀴한 구석만큼이나 누군가 나를 더 애정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발전 단계도, 단순 호감 -> 좋아함 -> 귀여움 -> 사랑을 거친 종착지는 ‘짠함’이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감정, 남자는 여자가 딸처럼 느껴지고 여자는 남자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것. 그래서 상대가 나에게 채워주고 싶은 부분을 느끼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을 드러내야 한다.


7.

마냥 즐겁고 행복으로 충만한 사람은 대체로 현재 향유하고 있는 경제적 토대가 있다. 그들의 ‘밝음’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결핍이 없는 것은 결국 타인이 깃들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관계를 만드는데 지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밝게 자란 사람은, 밝게 자란 사람끼리 교류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8.

심지어 완벽한 사람도 결핍이 있을 수 있다. 부족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애정하는 누군가의 결핍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그 자신을 서글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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