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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Oct 27. 2024

날씨의 맛

1. 우연히 팟캐스트를 듣다,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라는 문장을 들었다. 흥미로우면서도 신선한 관점이라 느껴, 문장의 근원을 좇아보니,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바르트의 발언 중 하나였다. 관련 서적으로는 '날씨의 맛'이 있어 바로 사서 읽어 보았다.


2. 각 시대에는 주류 이데올로기가 있고, 개인들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20세기 냉전을 떠올려보자. 한낱 개인은 시대 이데올로기를 결코 피할 수 없다. 이처럼, 날씨도 마치 이데올로기처럼 작동하며, 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독일과 같이 비교적 위도가 높은 지역의 국가와 적도 부근의 필리핀과 같은 국가의 날씨를 비교해 보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의 차이는 물론이고 사회문화적으로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어떠한 연유로든, 나는 지금까지 필리핀의 철학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지만, 독일에는 칸트와 쇼팬하우어를 비롯하여 수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형성한 다양한 학파들을 들어 보았다.


날씨가 춥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잿빛 속에서 염세적이면서 철학적 사유가 일상다반사일 수밖에 없다. 반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이 삐질삐질 나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스콜 속에서 냉소적이기 힘들다. 철학이 태동할 수 있는 역사적 맥락과 경제적 격차와의 상관관계를 감안하더라도, 날씨라는 요소의 영향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3.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은 지구상에서 사계절이 비교적 명확한 나라이다. 이는 적도 일대에 있는 국가나, 극지방에 있는 국가들보다 다채로운 날씨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의 다양성이 있는 나라는, 좋게 표현하면 다채로운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고, 안 좋게 말하면 감정이 지랄 맞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사계절을 만나보고 결혼하라는 말도, 계절, 기후가 바뀌면 사람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 감내할 수 있는 폭의 감정 변화인지? 날씨와 관계없이 감정의 항상성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점차 봄이랑 가을이 점점 짧아지며 사계절이 없어지고 있어서 대체로 아쉽다. 근데 역으로 접근해 보면, 성격이 변덕스럽고 유난스러운 사람도 사계절이 없어지면 좀 무던해질 수 있다.



4.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적인 호기심으로나 투자 때문에 이공학 쪽으로도 글을 읽고 공부도 많이 하게 되는데, 참 인문학은 ‘나’를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병렬 방식 중 하나의 갈래에 불과했음을 많이 느낀다. 인문학 원툴로는 해석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인문학 일변도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편협하고 답답하다. 결국, 다양한 학문들을 두루 살피고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런저런 앎이 토대가 돼야, 그제야 비로소 인문학이 빛을 발한다. 


날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고, 짧게나마 공부한 기상학을 통해 나를,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책에서 본 정말 멋진 문장 하나,  "날씨는 언제나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 반복’이라는 역설적 선물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예견된 선물은 늘 날 한 치의 오차 없이 나에게 기쁨을 준다. 곧 겨울이 오니, 비로소 겨울이어야 오는 감정들도 수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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