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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Nov 22. 2016

'아무것도 아닌' 폭력

네 일상은 내 환상이었다.


나는 소위 '낀 대학'이라 불리는 학교를 나왔다. '명문대'라 자부하기도, '지잡대'라 자조하기에도 애매한. 


학벌 컴플렉스는 꽤 오랜 시간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유독 문턱이 높은 신문기자를 꿈꿨기에 더 그러했다. 나는 현직 기자들의 필력보다 그가 어느 학교 출신인지가 먼저 궁금했다. 명문대를 나온 원로 기자들이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이야기해줄 때보다 나와 같은 학교, 혹은 비슷한 성적대의 학교를 졸업한 수습기자를 만났을 때 더 가슴 설렜다. 기자가 된 내 모습을 보다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는 건 후자의 경우였으니까.


어떤 신문사는 어느 학교 아래로는 서류도 안 붙여준다더라, 누구는 모든 스펙을 다 갖추고도 학벌 때문에 면접 한번 못 봤다더라 하는 소문 아닌 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때였다. 내게 꿈은 도전의 영역이기 이전에 가능성의 문제였고, 현직 기자들의 학벌은 내 주제로 품을 수 있는 꿈의 용량을 잴 가늠자였다. 


좋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속이 쓰렸다.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그 친구들의 학교생활은 뭔가 특별해 보였다. 내가 평생 고민해야 할 것들을 이들은 고민하지 않겠지. 자격지심이고 열등감이라 불러도 할 말 없지만, 어쨌든 당시의 나는 그 생각에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에 갇힌 나를 발견할 때만큼 내 스스로가 꼴보기 싫을 때가 없었다.


물론 그런 부분을 밖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학벌이라는 게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 행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격지심이 너무 강했던 탓이다. 내 못남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명문대를 다니는 주변인들과 그렇게 '평등해진'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 있었다.


"중고딩 때나 대학 대단한 줄 알았지, 막상 들어와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데고 다 똑같잖아.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하하 웃으며 "그러게. 대학이 뭐라고"로 맞받곤 했지만 그 때마다 가슴에 칼이 하나씩 박혔다. 그들이 말하는 대학과 내가 말하는 대학은 달랐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내게는 여전히 그들의 대학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대단한 뭐'고 '아무 거'였다. 그들이 웃으며 회상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나만 혼자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장 힘든 건 이 말을 던진 이들이 동질감 가득한 눈빛을 던질 때였다. 함께 웃었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악의 없는 태도 앞에서 내 꼬인 심사는 더 두드러지게 못나 보였다. 난 너희와 달라. 너희와 달라. 속으로 내 못남을 확인하고 들여다보며 자괴할 뿐이었다.


견딜 수 없었다. 나는 2학년을 마친 뒤 편입하기로 마음먹고 휴학을 신청했다.


편입학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내 또래들이 많은, 흔한 서비스 업무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월급제 풀타임이다 보니 그 일을 아르바이트로 여기는 사람보다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쯤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몇 안 되는 '대학생'중 하나였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다른 시선을 받곤 했다. 어딘가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는 게 크게 작용하는 듯 보였다. 대학을 가지 않은 또래 동료 몇몇은 - 물론 그걸 신경쓰지 않는 사람 또한 많았다 - 그 차이를 유독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집에 돈이 필요해 대학 진학 대신 일을 시작했다는 동갑내기 동료는 직장에서 받는 모든 부당한 대우를 '고졸'인 자신이 받아들여야 하는 천형인 것처럼 여겼다. 미리 정해진 자신의 몫이 딱 그만큼인양. 그래서 그 친구는 몇 년 뒤든 반드시 대학을 갈 거라고 했다. 그애에게 대학은 이상향이었다. 동시에 언젠가 더 나은 몫을 받아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반면 현실의 자신은 대학생보다 어딘가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대학을 가지 않은 이들에게 세상이 더 냉혹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건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대학을 나오고 나오지 않고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퇴근 후 함께 술을 한 잔 하다가 대학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하는 그애에게 "대학도 별 거 없다"는 말을 꺼낼 뻔했다.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을 때 아차 싶었다.


끝내 '별 거 아니게' 되지 못한 명문대에 발을 디뎌보려 휴학까지 한 내가, 감히 누구의 소망에 대고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을 한단 말인가. 주제넘은 짓이었다. 말을 삼킨 게 다행이었다. 내뱉었다면, 친구는 1년 전의 내가 그랬듯 또 한번 상처받았겠지.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이 주먹이라는 걸, 그 즈음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내가 맞을 수도 있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휘두를 수도 있는 주먹. 악의는 없지만, 아니 오히려 선의에 가깝지만, 그래서 얻어맞으면 더 아픈 폭력.


편입에는 실패했다. 나는 '낀 대학'으로 다시 돌아왔다. 패배감과 시간을 허비했다는 조급함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괴로움 안에 예전과 같은 컴플렉스는 없었다. 새삼 학벌은 허상이고 오로지 내 능력이 중요하다는 무지갯빛 희망을 가지게 된 건 아니었다. 내 상처는 단지 학교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언제나 그 위는 존재한다. 나는 또 위를 바라보고 내가 가지 못할 세계를 꿈꿀 테고, 그들의 일상이 너무나도 일상적임에 상처받겠지. 그걸 극복하려면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기보다 그들과 내 시선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더 빨랐다. 그조차 쉽지 않지만. 그리고 그것이 정말 바람직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자괴하는 일상조차 누군가에게는 환상일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스스로 고민할지언정, 타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자괴를 드러내는 건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마 난 평생 어느 틈에 '낀'채로 살아갈 거다. 모두가 그렇듯. 


혼자 그 구조를 깨부술 힘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있듯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 뿐이다. 적어도 내가 받은 상처를 돌려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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