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아졌고 권고사직 대상자가 되어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2023년 6월 1일부로 백수가 되었다.
이미 내가 소속된 팀이 해체되었던 상황 속에서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이전 회사도 3번 이상 망한 이력이 있음) 놀라기보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현실로 빠르게 돌아와서 HR 담당자님에게 나는 괜찮다고, 그런 말을 전하게 돼서 힘드시겠다고, 대견한 척 말을 건넸다. 꽤 멋진 어른처럼 굴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때는 실감이 안 났던 것 같다.
너무 애정했으니까. 이 프러덕트와 서비스를 정말 좋아했어서,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너무 좋아서, 정말 후회 없이 일했어서 더욱더 실감이 안 났던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성과도 만들었는데, 대체 왜' 라는 마음이 출근 마지막 주에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미성숙해 보이기 싫었고, 감정을 드러내기 싫었고, 그러한 마음들이 나를 대견한 척, 괜찮은 척하게 만들었다.(중간중간 CPO와 팀장님과 굿바이 허그를 할 때는 잠깐 울컥했다 사그라들었다.)
덤덤하게 많은 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어떤 팀원은 나에게 위로를, 어떤 팀원은 회사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대한 감정 토로를, 어떤 팀원은 나의 미래를 응원해 주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많이 닳아갔다. 어른스러운 척, 한두 번이 아닌 척, 로봇인 것처럼 나보다는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많이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 퇴사날,
무언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타인의 말들 속에 범벅이 되어 나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
애인의 갑작스러운 카톡 통보 헤어짐처럼, 나는 회사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방황했다.
친했던 팀원들과 카톡으로 내가 없는, 나는 모르는 회사 분위기와 새로 맡은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며 아이디어를 논하게 되는 날에는 내가 그들의 곁에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서 밤늦게 멍 때리며 슬픔에 사무쳤다.
그렇게 불안함을 덮기 위해 전력으로 회피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약속을 잡았다.
헤드헌터를 만나고, 관심 없는 회사의 면접을 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마구잡이로 하고, 회사 밖 동료를 찾는답시고 이리저리 커뮤니티 모임을 다녔다. 전남친을 잊게 해 줄 새로운 남친을 찾듯이.
혼자 남은 것이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빠르게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조급하게 행동하는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제 너무 잘 아니까. 그럴 바에는 에너지를 발현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를 혼미하게 만들도록 촘촘히 일정을 채워나갔다.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들을 만날수록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우울해져만 갔다.
약속이 일찍 끝나 집에 일찍 들어오더라도 나는 유튜브를 계속 소비하고 스크롤을 내리고 뜬눈으로 새벽 2시에 잠자는 날이 잦아졌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지?
정말 창업이 다일까?
나는 팀원들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경험을 또 하고 싶은데 이제 다시는 못하는 거야?
온갖 두려움들이 나를 잡아먹었다.
그때, 내 눈에 띈 영상이 있었다.
솔직히 제목을 봤을 때 그냥 흔한 끌어당김이 어쩌고 하는, 그냥 평소 미디어에서 흔히들 말하는 희망찬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영상 속 그녀의 말을 듣고 나조차 그 마음에 동해 마음이 울렁거렸다.
나의 커리어 5년을 돌아보면, 치열했고 멋있었고 열심히 살았다.
5번의 권고사직을 떠올려보면 거의 평균 1년에 한 번씩 회사가 폐업한 것인데 그때마다 5번이나 이직에 성공한 것이지 않은가? 심지어 연봉을 60% 이상 올렸고? 나 좀 멋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속에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키워드를 떼버렸을 때,
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일하고 싶고
어떤 환경에서 일했을 때 최고의 성과를 만들었는지
나는 어떠한 30살이 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더라.
그냥 하나도 안보였다.
이제까지 달려왔지만 정말 나의 목소리로 달려온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허함만 남아 버둥거리는 나를,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조급해하는 나를 멈추기로 결심했다.
그래, 떠나자. 발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