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은 Apr 10. 2021

53 : 週

実感

: 실감


관리 회사 직원이 방을 점검했다.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서 트집 잡힐 건 없었다.

단, 책상에서 커피를 쏟아서 그 아래 벽지에 좀 누렇게 색이 탔는데, 다행히 직원이 거기까지 보진 않았다.

아, 입주 초에 커튼 걸이도 부러뜨렸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여자친구에게 인사하려고 손을 짚었다가 그랬는데, 본드로 잘 붙여뒀다.

아무튼 그것 제외하고는 방 깨끗이 잘 썼다고 자부한다.

혹시 작은 흠집만 있어도, 딴지 걸어서 벌금 물까 봐, 1년 동안 늘 조심했던 덕분이기도 하다.

짐을 밖에 다 꺼내 두고 보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법 어질러져 있던 방이 텅텅 비어버렸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한기를 잊을 수가 없다.

바닥이 아주 찼다.

바닥이 다시 그때처럼 찼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걸, 이제 실감해야 한다.




微笑

: 미소


워킹홀리데이의 마지막 여행지는 오타루였다.

처음 삿포로에 온 계기가 영화 '러브레터' 때문이었다.

'러브레터'의 촬영지가 오타루다.

삿포로에 있는 동안 자주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저번 친구가 이곳에 여행 왔을 때, 겸사 한번 가본 게 다였다.

여자친구와 단 둘이서도 다녀와 보고 싶었다.

정들었던 삿포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여행이라 그런지, 들뜬 기분 하나 없이 씁쓸하기만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 써야 할 돈 걱정도 앞서니, 뭐 사 먹기도 망설여졌다.

그래도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유명한 카페에 가봤으나, 영업하고 있지 않았다.

날씨도 춥고, 더 돌아다닐 체력도 없어서 그냥 가까운 키티 카페에 들어갔다.

청소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너저분한 카페였다.

앉은자리에 때 탄 키티 인형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애써 미소 지으며 인형을 안고 있어서, 기념사진을 찍어 줬다.




感謝

: 감사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치토세 공항에 갔다.

나카지마에서 탄 버스가 얄궂게도 오도리 공원을 거쳐, 삿포로역을 지나는 길을 따라갔다.

지난 일 년, 많은 추억이 쌓인 곳들을 지나자, 아쉬움에 지쳐있던 마음이 심하게 출렁거렸다.

지난 1년, 즐거웠던가.

그런 날도 많았지만, 어쩔 땐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걸 잘 버티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행복 가득한 날들도 있었다.

걱정에 덮여 허우적 되던 날들도 많았지만, 또 해결하려다 보니 다음 목표가 생겼다.

30대의 1년을  없이 허비해 버린  같기도 하지만, 한편,  덕분에 과거 어떤 나보다 강인해져 있는  다.

여자친구와 수없이 싸웠던 나날들이 참으로 괴로웠지만, 그만큼 서로를 더 알게 됐고, 더 아끼게 됐고, 더 많을 걸 약속하게 되었다.

이제, 삿포로를 떠난다.

삿포로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푸근했던 공기와 사람들, 맑았던 풍경과 차분함, 여유와 열기가 가득했던 곳곳의 모든 삿포로에게.

고마웠다, 정말.




매거진의 이전글 52 : 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