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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육펜스 May 25. 2024

<리뷰> 리플리:더 시리즈  







오랜만에 몰입 중인 시리즈. 리플리.

원작은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로

1960년 <태양은 가득히>, 2000년 <리플리>로 이미 영화화 된 적이 있다.

앞선 영화들과 달리 작은 설정들이 바뀐 부분이 있긴 하나 큰 흐름은 같다.

사기꾼 리플리가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그린리프 가의 외동아들을 죽이고

마치 그 인척 행세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총 8부작으로 두 시간짜리 영화로는 다 담지 못했던

리플리의 심리와 변화 등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리플리 : 더 시리즈는 8부작 전체가 흑백화면으로 처리됐다.

개인적으로 흑백화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리즈에서는 상당히 좋았다.

주인공인 리플리라는 어두운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

어울리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흑백이라고는 하지만  그림 한 컷 한 컷이 화보집처럼 아름답고 군더더기가 없어

상당히 볼만 했다.


특히 나래이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중간중간 보여지는 인서트 화면들이

리플리의 심중을 읽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세밀하고 밀도있었다.

영상을 보고 있는데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

이런 게 바로 영상문법이라는 거구나 그런 느낌을 확 받았던 것 같다.  

극본도 중요하지만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연출자가 붙어야

완성도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대본도 소용이 없다.








처음 리플리 역할에 캐스팅 된 배우를 보고는 조금 의아했다.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들롱, <리플리>의 멧데이먼과 달리

미남이 아닌데다 나이도 꽤 많아 보여서 왜 이런 캐스팅을 했을까 싶었던...

그런데 보면 볼수록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플리 : 더 시리즈는

강렬한 색감을 보여줬던 영화들과 달리 상당히 어두운 톤 앤 매너를 갖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 리플리도 어둡고, 좀처럼 심중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 속 리플리들처럼 잘생기고 영리하고 귀여운 사기꾼이었다면

대중의 호감도는 상승했을 지 모르나

시리즈 속 리플리가 나에게는 오히려 현실적이고 진짜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설정 중 하나는

리플리가 이탈리아의 국민화가 카라바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이다.

리플리는 그린리프가의 아들 디키를 통해

카라바조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되고 그의 그림에 매혹되는데  

카라바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더욱 흥미를 느낀다.

화가로서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온갖 죄를 다 저지르며

종국엔 살인까지 저질렀던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작품을 유작으로 남겼는데

이 그림 속 다윗이 젊은 시절 카라바조의 얼굴이고

다윗에게 목이 잘린 골리앗은 중년의 카라바조 얼굴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얼굴은 승리한 자의 만족감보다는

동정과 연민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는 카라바조가 이 그림에 자신을 투영했으며

실은 다윗과 골리앗이 아니라

젊은 카라바조 자신이 늙고 추악해진 미래의 카라바조를 들여다보며

괴로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암튼 리플리가 카라바조를 자신과 동일시한 건 왜 였을까.

시리즈에서 리플리의 개인사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어느 정도 불우한 환경속에 자랐음을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아마도 리플리는 재능있고 똑똑했지만

그것을 펼칠 수 없었던 환경이라는 제약에 발목이 잡힌 것 같다.

실제 리플리의 사기행각은 상당히 철두철미하고 영리하다.

또 그린리프가의 아들 디키가 그림을 그렸지만 전혀 재능이 없었던 것과 달리

리플리는 그림에도 재주가 있었다.

리플리는 디키의 여자친구인 작가 지망생 마지의 글도 수정해주는데

여기서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플리는 결코 디키를 뛰어넘을 수 없었고

종국에는 살인자가 되어 계속 거짓말을 하고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삶을 산다.


리플리에게 카라바조가 어떤 의미였을까는 8화를 보면 더욱 명확해지는데

프롤로그에서 카라바조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살인을 저지른 후 쫓기게 되고

카라바조의 어머니가 이번엔 또 무슨 짓을 저지르냐고 추궁하는데

카라바조는 "나는 다만 머물 곳이 필요했다" 고 대답을 한다.

아마 리플리의 심정도 이랬던 것 같다.

술을 마시는 카라바조의 얼굴 위로 잔을 드는 리플리의 얼굴이 겹쳐진다.

예술을 사랑하고 재능도 있었지만 결국은 추락해버린 불운의 남자,

리플리가 카라바조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거다.






리플리는 현실의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디키를 죽인 후, 리플리는 디키 행세를 하며

디키의 부모와 그의 여자친구 마지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쓰는데

계속 톰 리플리는 진정한 친구이며 좋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디키의 재산을 가로채고 그의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거기서 어떤 만족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진짜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


그래서 편지를 쓸 때마다 "톰은 좋은 친구에요. 톰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 라는 말을 반복하는 그를 볼 때면 동정심이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가 아니라 작품...


모든 드라마나 영화를 짤로 보는 시대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전개가 느리다, 고구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데 한 인간을 탐구하고 면밀히 관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리플리: 더 시리즈가 썩 마음에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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