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에 읽은 47권의 책 -문학과 그림책 24권
계절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4년째 써온 독서노트. 이번에만 봄과 여름이 한 번에 묶인 이유는, 비로소 가을에 이르기까지 날카롭고 혹독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재밌는지, 책의 잔향을 음미하는 법과 글로 나누는 유대감을 가르쳐준, 책 친구이자 책 선생님이었던 엄마를 위해 이번 독서노트를 남긴다.
같이 좋아하여 예약해 두고 손꼽아 기다리던 앤 전집이 장례식을 치른 집에 도착해 있었다. 책을 나눠 읽고 어땠는지 밥 먹고 산책하며 한참 수다 떨던 시간들은 나의 일부가 되었기에. 마음속 별자리로 등대로 영원히 나의 책 친구가 되어줄 것을 안다. 그 마음으로 앤과 토지를 비롯한 여러 책들을 읽었다.
이번 독서노트의 반은 엄마가 있던 봄, 반은 텅 빈 여름에 읽은 책들이다. 슬프고 그리운 보고 싶은 마음들도 글자 속으로 녹아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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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여름의 독서노트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은 문학과 그림책, 2편은 비문학 책으로 나눴습니다.
빨간 머리 앤 전집 1-5권 _루시모드 몽고메리
초록지붕집의 앤, 에이번리의 앤, 레드먼드의 앤, 바람 부는 포플러 나무집의 앤, 앤의 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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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년 전에 쓴 앤 이야기
오랜 시간 좋아해 온 책이 새로운 버전으로 나온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다. 동서문화사 버전의 전집, 시공주니어의 앤 시리즈,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드라마를 거쳐 이 전집에 이르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그림도 그렸고 양장 커버에 게다가 빨간색이라니! 당장 결제. 만듦새가 좋은 책을 아껴보느냐고 한 권씩 커버를 씌워보았다.
"가장 멋지고 즐거운 날이란 아주 인상적이거나 놀랍거나 신나는 일이 일어난 하루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진주를 한 알씩 실에 꿰듯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작은 기쁨이 하나씩 부드럽게 이어진 날이죠."
오랜만에 정주행을 시작했다. 힘들 때 잔잔하게 곁에 있어주는 이야기들.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사랑스러운 건 1편이지만, 2편인 에이번리의 앤에 나오는 인물들을 가장 좋아한다. 3편인 레드먼드의 앤에도 필리파와 로이같은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대학생활, 패티의 집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역시나 흡입력 있다. 오해를 뚫고 이루어지는 마지막 청혼 장면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정말 어른이 되는 건 슬픈 일이다.
4편인 바람 부는 포플러나무의 집에서부터 든 생각은, 이건 일종의 전원일기가 아닐까… 앤이 결혼 전 다른 지역의 교장으로 있으며 하숙하는 내용이다. 다른 시리즈처럼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며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모든 인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능력이 느껴진다. 4편 만의 특이한 점은 앤이 쓴 편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길버트와 떨어져 생활하며 나눈 롱디들의 연애 이야기도 있으니 잡숴보세요. 다만 아쉬운 것은 가장 두꺼운 권이라 그런지 그림이 별로 없다. 그림 더 주세요...
5편인 앤의 꿈의 집에서는 소름 반전의 딕 무어 이야기 그리고 아닌 밤 중에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리게 한 짐 선장의 인생사가 담겨있다. 매슈와 비슷한 성격이라 생각했던 아이의 이름은 매슈 제임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원주민식 이름은 부드러운 어감의 '아벡웨이트'이다. 파도 위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게 너무 좋은 걸 보면 앤과 나는 이미 영혼의 친구다.
책의 맨 뒤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매우 유용한 사실 또한 많았다. 몽고메리가 코닥 주최 사진 경연대회 심사위원일 정도로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것도 영혼의 친구!)
넷플릭스 드라마를 n번 째 정주행하며 책을 함께 보았는데 (낮엔 밥 먹으며 드라마를 보고 저녁엔 책을 읽는 앤친자의 여름 생활) 책이 훨씬 생동감 있다. 연재 때 읽었던 사람들은 애태우며 쿠키라도 굽고 싶어 졌을 테다. 역시 이번에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6편부터 읽는 속도가 더뎌지긴 했지만 이젠 전집이 집에 있으니 읽고 싶을 때 천천히 완결까지 읽어볼 예정이다. 뒤 편에 주인공이 될 릴라라는 딸이 벌써 좋다.
그리고 지금은 앤을 읽고 있다. 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것의 뒷모습이 이러했지. 어깨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아끼던 것을 차분하게 정리해 내는 작업 같다. 벨벳으로 잘 덮여있는 안을 들여다보며, 그 먼지 냄새와 오래된 글씨체, 끝없는 묘사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_6년 전, 앤을 읽고 남긴 감상문 중에서
여전히 사랑하는 앤. 아직도 앤처럼 살고 싶다.
토지 1,2 _박경리
드디어 시작했다. 9월쯤이면 남은 올 한 해가 얇게 느껴져 부랴부랴 무얼 시작하게 된다. 작년엔 그게 운전과 수영이었고 올해는 달리기와 토지다. 엄마가 친구와 토지 읽기 대결을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청소년판, 친구는 두꺼운 원작이었다는 반전의 결과가 있었던! 12권짜리 전집이 집에 있다. 그걸 읽기 시작했다.
교과서로 한국 소설을 익혀와서 그 시절의 내용이 읽기 힘들어 도전하지 못했지만, 최근 드라마 연인을 보며 사극에 좀 취해있기에 상상이 아주 잘 된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온, 아주 오래되고 케케묵은 시도이지만 이번엔 완주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나도 이제 '서희'같다, '길상'같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겠지?
앞 쪽에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 서희의 윗대 이야기가 주로 나오고 있기에 아직 내용의 진입로다. 인물이 몰아치듯 많이 나오고 헷갈리는 와중에, 청소년판이라 그런지 친절하게 뒤에 수록된 인물 가계도가 있어 계속 뒤적이며 보고 있다. 언젠가 봄에 고매화를 보고 올랐던 언덕 아래로, 소설만큼 길고 넓게 펼쳐져있던 평사리를 떠올리며 다음 권으로 향해본다.
단순한 열정 _아니 에르노
이 모든 감정을 느끼고 적어두는 부지런함에 치얼스.. 사랑도 이렇게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좀 미친것 같지만 누구나 이렇게 미친 부분은 있기에 이해가 된다. 짝사랑하는 사람이 읽으면 두 배로 미칠 수도 있다, 진지하게... 자기 얘기인데 소설인 게 신기하다. 소설이라고 탈을 쓴 것만 같은 이런 걸 오토픽션이라고 하는구나. 몇 수를 앞두고 이런 책을 냈나 보다.
책의 분위기를 음악으로 듣고 싶다면 웨스턴 카잇의 노래를 들어보시길. 왜, 좀비, 사랑의 죄인을 들었던 기분이 떠오른다. 책과 노래 모두 우아하고 처절하고 깔끔하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_김혜순
죽음에 관한 시집. 지금 읽고 싶지 않았지만 책꽂이에 처연하게 꽂혀있는 게 눈에 밟혀 읽었다. 저 봄 잡아라… 엄마와 나의 이야기다. 이 책은 아직 슬픔을 삼키는 지금에 적절치 못하다.
하늘의 맨살 _마종기
좋아하는 시인의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는 기쁨! 마종기는 상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 노래하는 시인이다. 이번 책에서는 친구를 잃은 슬픔이 느껴진다. 여행하고 떠돌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이제 없는 사람들에 대해 쓴다.
수원의 눈, 플로리다 편지 두 편이 특히 좋았다.
책을 사는 세 번에 한 번씩은 꼭 동화책을 함께 산다. 그림을 꼭 같이 보고, 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는 책을 고른다. 주로 식물을 좋아하고 와글바글한 스타일을 좋아하기에 생태 분야의 그림책을 많이 본다. 그림 그리러 오는 친구들과 나눠 볼 수 있어 몇 배로 귀하다.
여름이의 개울 관찰일기 _신동경, 김재환
이제는 꾸준한 관심사인 새!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새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의 새 관찰 일기를 덧붙이자면, 최근에는 장박새와 백로를 만났다. 주방의 창문 너머 연둣빛 장박새가 해바라기 대에 앉아 오랜 시간 쉬는 모습을 봤다. 고요하고 잊을 수 없는 여름의 시간이었다.
우리 학교 텃밭 _노정임, 안경자
정말 학교에서 이런 걸 배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림 그리러 오는 친구들이 조금이나마 이런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에 마구 추천한다.
모네의 정원에서 _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레나 안데르손
드래곤볼 모으기 중인 작가의 책이다. 최애는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이다. 아주 오랜 시간 언제 봐도 모든 구석이 좋다.
파리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 지베르니를 걷고 싶다. 엄마랑 가면 정말 좋았을 텐데! 혹시 언젠가 지베르니에 가게 된다면 꼭 이 책을 들고 가야지. 파리행 비행기에 나와 함께 몸을 싣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운명이 느니라.
이 책을 보고 모네의 집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바닷가는 다시 숨을 쉴 거야 _데이비드 벨아미, 질 도우
그림 속으로 스노클링! 바닷가의 생물들을 정말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으로 담았다. 유조선으로 오염되었다 회복하는 모습은 태안을 떠올리게 한다. 바다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 _헨리 콜
펜으로 섬세하게 그려나간 비버의 털이나 나뭇가지 더미 표현이 아름답다.
허둥지둥 바쁜 하루가 좋아 _리처드 스캐리
나도 허둥지둥 바쁜 하루가 좋아! 일이 가진 힘과 소중함을 알기에 더 좋다. 이런 식의 책이라면 늘 환장하는 내용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린 옥수수 마을이 떠오른다. 좋았던 장면들은 나의 영원한 출발이자 오래된 추억, 그림의 근원인 '찔레꽃 울타리' 여름 편을 떠올리게 한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 흔적 도감 _박인주, 문병두, 강성주
소장하고 자주 들춰보는 보리 시리즈의 다른 버전이다. 동물 흔적에 관한 도감이라니, 너무 흥미롭잖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멋진 사실 몇 가지를 소개한다.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지만 청설모는 자지 않는다.
청설모가 다람쥐보다 두 배정도 오래 산다.
청설모는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다람쥐는 굴에 산다.
고라니는 새끼를 낳고 키울 때도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
두더지 지렁이 많이 먹는구나…
너구리는 죽은척하다 달아날 수 있다.
수달은 모래밭에 꼬리 끌린 자국도 남긴다.
삵은 헤엄을 잘 친다.
호랑이는 목욕할 물가까이에 살고, 먹이를 먹은 후에는 꼭 피 묻은 주둥이를 물에 씻는다 (골져스...)
이 많은 그림을 두 명이 그렸다니! 이 책이 좋았다면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트리스탄 굴리)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어른 버전에 더 넓은 내용이 담겨있다.
이건 내 우주선이야! _양승희
화실의 소식지에서 추천했다.
+)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불의 잔, 불사조 기사단, 각 2권씩 페이퍼북 영국판 스프링제본 / 총 6권
올 초부터 이어온 영어 공부의 일환으로 영어로 해리포터 읽기가 계속되고 있다. 영국판 페이퍼북 전집을 사서 스프링 제본을 했다. 한 시리즈당 두 권으로 나눠지게 맡겼고, 아즈카반부터 불사조기사단까지 영어로 읽고 모르는 단어와 좋아하는 구절은 영어 노트에 따로 정리해 둔다. 일상에서도, 여행지에서도 함께해 온 덕에 지금은 혼혈왕자를 읽는 중이다. 올해 안에 완독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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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여름의 독서노트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은 문학과 그림책, 2편은 비문학 책으로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