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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May 22. 2023

과호흡 증후군

과호흡 증후군으로 공황 발작이 시작된 환자의 사투

개업한 의사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은 위기를 경험한다. 그중 최악의 위기는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영구적 장애를 남기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나에게도 여러 번의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정말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50대 중반의 부인이 남편과 함께 외래 진료실을 찾았다. 병원이 김포에 있었는데 멀리 부천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던 것이었다.


조금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정성을 다해 외모를 치장하고 긴장된 표정과 함께 목소리가 작고 떨려 소심하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진료를 시작했다.


약 1년 전부터 왼쪽 발 뒤꿈치가 아파서 여러 군데서 치료를 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세심한 진찰과 간단한 엑스선 촬영 후 척추 디스크에서 내려왔거나 뒤꿈치 종골 뼛속의 중대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발의 형태가 비교적 첨족에 가까워 인대의 과도한 긴장으로 염증이 재발하는 '족저 근막염'으로 진단하고 치료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질환은 족저 근막의 만성 퇴행성 염증으로 체중조절, 신발 교정, 소염제 복용, 소염 국소 주사요법, 프롤로 요법, 초음파 요법 등의 1차 치료를 먼저 해본다. 그러나 치료효과가 없고 자주 재발하여 일상생활에 현저한 장애가 있으면 족저근막의 부착부를 잘라주는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날 치료로 국소 소염 주사 요법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진찰대에 누운 자세로 약간의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소염 주사를 족저근막 기저부에 주사를 하고 돌아서는 찰나에,


" 아! 어지러워요. "


하면서 숨을 잘 쉬지 못하였다. 약물 부작용이라면 주사 후 최소 15분 이상은 되어 약이 전신반응 후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혈관주사가 아닌 이상 즉각 나타나는 반응은 주로 심리적 반응에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환자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여 급히 처치실로 옮겨 바이탈 싸인을 체크하였다. 혈압이 240 mmHg까지 올라가며 심전도에서 부정맥이 뜨기 시작했다. 이 상태에서 계속 진행이 된다면 5분 내에 심정지가 일어나고 10분 내로 환자가 사망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되고 두려웠다.


Hyperventilation Syndrome, 과호흡 증후군이었다.


사람이 극도로 긴장이 되어 호흡을 너무 급하게, 많이 쉬게 되면 혈중에 이산화탄소 수치가 너무 떨어져 인체의 산성도가 알칼리화가 되어 의식을 잃고 심한 경우는 사망에 이르는 심인성 질환이다. 주로 예민한 여성에게 흔한 일인데 부부싸움을 하다 종종 응급실을 찾는다.


이때 안정제인 발리움 한방이면 해결되는데 다만 호흡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공중보건의 시절 발리움 주사 후 호흡정지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어 이약을 쓰는 데는 주저하였다.


다만 수액을 달고 바이탈을 보면서 응급처치를 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응급처치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인데, 비닐봉지를 이용하여 코와 입을 덮어 자기가 내쉰 숨을 다시 들이키도록 하는 법이다. 10번에 한번, 밖의 공기를 마시게 하면서 거의 30분간 봉지 호흡을 하게 하고 환자를 안심시켜 주면 서서히 깨어난다.


그날은 환자의 의식이 쉽게 돌아오지 않아 앰뷸런스를 불러 후송하기로 하였다.


특히, 그날은 나의 심장검사를 위해 부천 세종병원에 협심증 정밀검사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었다. 환자의 집도 부천이고 심장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앰뷸런스에 동승하여 환자를 관찰하며 같이 가기로 하였다. 나도 환자이고 그녀도 환자인 셈이었다.


의심과 걱정이 혼재되어 있는 표정의 보호자와 함께 부천으로 가는 국도에 응급차는 소리를 지르며 부지런히 달렸다. 환자는 조금씩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안심과 함께 여유가 생기자 나는 스스로 말없이 상념에 잠기어 갔다.


의과대학을 입학한 지 16만에 꿈에 그리던 내 병원을 개업하게 되었다. 가난한 학업 시절, 군복무후 처절한 정형외과 레지던트 시절, 전 재산을 투자해도 모자란 개업자금에 은행 빚까지 짊어진 지금...


개업 초기, 어려운 자금사정을 지나 환자수가 늘고 안정이 되어갈 무렵 나의 심장통이 시작되었다. 새벽에 출근하여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를 보고 저녁에 수술까지 해야 하는 강행군에 강심장을 가진 의사라도 스트레스로 심장이 온전할 수 없으리라!


국내 심장병 치료로 유명했던 부천 세종병원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거의 깨어나 안정을 찾았다. 60이 넘어 보이는 응급실 담당의사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심장 초음파와 트레드 밀 검사기에서 마스크를 끼고 땀이 나도록 뛰었다. 하루 종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후 뛰는 심장 검사는 내 심장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아보기 위한 최고의 타이밍이었던 것이었다.


검사 후 간략한 결과를 알려주는 심장전문의는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 아직 100년은 더 써먹을 수 있습니다. 아무 이상 없어요 "


안도하였다. 환자도 괜찮아졌고 문제 많을 것 같던 나의 심장도 쓸만하다니...


응급실로 내려오니 내가 도망간 줄 알고 환자의 남편은 눈을 부아렸다. 보호자에게 단호하게 말하였다. 이것은 부인의 내적 심리적 문제이므로 나의 치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 병원의 치료비는 받지 않겠지만 후송병원의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대체로 환자와 보호자는 수긍하였다. 병원을 나올 때 응급실 의사는 나지막이 나에게 일러 주었다.


" 남편에게 물어보니 가끔씩 거품을 물고 발작했다는데요... "


그로부터 6개월 후 그 부인이 다른 통증으로 내 병원을 찾았다. 그날 보여준 원장의 책임감 있는 처치가 인상적이고 고마웠던지 다시 찾아준 것이었다.


고마웠다. 의료사고가 날뻔한 환자가 신뢰를 가지고 다시 찾아준다는 것은 의사가 만날 수 있는 하나의 보람이나 영광이 아닐까.


그 환자에게 다시는 주사나 수술 같은 적극적인 치료는 꿈도 못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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