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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Sep 30. 2022

잘린 팔을 살려라!

사고로 팔이 절단된 환자 이야기.


응급실이 웅성거렸다.


라면 박스 속에 얼음과 함께 포장되어 온 사람의 팔을 보고 기겁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응급실 침대 위에는 토니켓 고무줄에 묶인 팔을 들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환자가 누워 있었다.

"제발 이것만 풀어 주세요!"


과다 출혈로 혈압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묶어 놓은 지혈대를 가리켰다. 5시간 이상 지혈대에 묶여있는 팔은 산소공급 차단으로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그것을 풀기만 하면 완 동맥의 압력으로 피를 천정까지 뿜어 올릴 것이며 환자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저혈압 쇼크로 심장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조그만 참으세요! 빨리 응급 수술을 준비할게요." 응급실 수간호사가 환자를 달래였다.


당직 콜은 받은 나는 환자와 절단된 팔과 엑스선 필름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35세의 남자 환자로 타이어 공장에서 새벽 근무를 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오른 팔이 기계 롤러 사이에 끼어들어가 끊어지고 말았다. 절단되었다기보다는 팔이 뽑혀나갔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정도로 근육과 신경, 혈관들이 엉망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손 부위와 손목, 팔 부분은 포기하기 아까울 정도로 깨끗하여 재접합을 염두에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새벽 3시에 사고가 발생되어 우선 구로구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떨어진 팔의 재접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회사의 지정 병원으로 전원 된 것이었다.


우선 골든 타임을 생각해 보았다. 보통 사고 후 8시간 정도를 골든 타임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 이후에 재접합을 하게 되면 괴사가 진행된 근육 세포의 독소에 의해 오히려 팔을 살리려다 환자의 생명이 위독하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골든 타임 이내에 혈액 순환을 시켜 주어야 한다.


내가 환자를 진찰한 시점이 사고후 5시간이 경과되어 사실 시간이 촉박하였다. 절단된 부위를 얼음 위에 잘 포장한 덕분에 괴사가 일찍 시작되지 않기를 기대하고 일단 빨리 수술만 진행하면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재접합이 성공한다 해도 팔의 기능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맥과 정맥을 찾아 혈액 순환을 돌려 근육이나 피부조직은 살려낼 수가 있지만 신경이 문제이다. 날카로운 칼날 같은 것에 잘리면 신경을 찾아 접합하면 말초 신경이라서 오랜 기간에 걸쳐 감각이 돌아온다. 그러나 롤러에 말려들어가 신경이 모두 뽑혀나갔기 때문에 감각이나 손가락의 운동은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절단하기는 매우 아까웠다. 그래서 재접합이 성공하였을 경우 이득이 되는 점을 요약해 보았다.


● 팔뼈 중 척골은 살릴 수 있어 팔을 구부려 물건을 잡을 수 있다.

● 감각은 없어도 관리를 잘하면 미용상 의수보다 낫다.

● 지금 절단하면 팔꿈치 관절을 희생하고 관절 윗부분만 남지만 나중에 절단하면 관절 아래로 절단하여 의수를 장착할 때 많은 기능을 살릴 수 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정형외과 내에서도 재접합에 대해 학자마다 의견이 다른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절단된 팔은 영원히 사라진다. 무엇보다도 추후에 절단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붙혀놓기만 하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모든 설명을 하고 수술 승낙서를 받아 서둘러 수술 준비를 독려하여 병원 도착 30분 만에 수술이 시작되었다.


재접합의 순서는 보통 골절된 뼈부터 먼저 고정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는 먼저 혈액 순환을 복구하여 근육 괴사를 막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하고 상완 동맥을 찾기 시작하였다. 동맥이 끊어져 근육 속으로 말려들어간 것을 겨우 찾아내어 클립으로 고정하여 미세 나일론으로 접합하였다. 비교적 굵은 동맥이라 미세 수술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고 맨 눈으로 촘촘하게 접합할 수 있었다. 클립을 풀고 피를 순환시켜 보았다.

"와!"


혈액이 돈지 30초도 안되어 백지장처럼 하얗던 손가락이 분홍색으로 화색이 돌았고 산소를 공급한 피는 다시 정맥을 돌아 절단된 팔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신비로운 생명의 힘에 도파민이 솟구치며 희열희망이 느껴졌다.


큰 정맥을 제외하고 작은  혈관들은 보비로 지혈하고 정맥을 연결하여 정상적인 혈액 순환을 복구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그리고 천천히 절 부위를 관찰하였다. 팔에는 뼈가 두 개인데 요골과 척골이라고 한다. 요골의 윗부분은 손을 회전하는데 쓰이는데 이 경우는 팔을 구부리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할 상황이라 비틀린 요골의 윗부분은 제거하였다. 척골의 절단면을 찾아 호프만이라는 외고정 기기로 우선 골 접합을 마무리하였다.


다음은 신경을 찾아보았다. 신경이 살아야 결국 기능과 감각이 살아나는데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신경이 뽑혀나가 살릴 신경이 없었다. 이런 경우는 노출된 신경이 있으면 말단 신경종으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에 근육 깊이 들어가 있는 것이 차라리 났다.


마지막으로 근육과 대를 찾아 접합하였다. 피부는 뜯겨 나가 피부 봉합이 불가능하였고 추후에 상처를 치료하여 육아 조직을 만든 뒤 피부 이식을 하면 되기 때문에 오픈한 상태로 수술을 마무리하였다.

오전 9시경에 수술을 시작하여 수술을 끝내고 붕대를 감으니 오후 6시가 되었다. 무려 9시간을 쉼 없이 수술을 하여 기진맥진하였으나 배고픈 느낌도 없이 하루가 충만하였다. 물론 그 사이 마취 팀이나 수술 스크랩 간호사는 교대로 식사를 하게 하였다.


수술 후 특별히 중환자실에 입원을 시켜 수술 후 합병증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지시하였다. 팔 하나 살리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행여 수술 후 색전증이나 패혈증이 오면 사망 가능성이 80%이기 때문에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취에서 깨어난 환자에게 살아있는 본인의 손을 보여주니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하였다.


1주일간의 중환자실에서 환자 케어를 잘해준 덕분에 아무런 수술 합병증 없이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3주 후에 피부 이식을 시행하여  상처를 안정시키고 뼈가 붙기만을 기다렸다. 3개월쯤 기다려 보고 진이 나오지 않으면 고정에서 내 고정으로 바꾸면서 뼈 이식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나는 아쉽게도 병원 개업이라는 독립을 위해 퇴직하고 나올 때였다.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고 후임 과장에게 인계하면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미안하였다. 보호자인 환자의 아내는 30대 초반으로 아담한 여인이었는데 마음이 순수하여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병하였다.


후일담으로 한심한 일이 일어났다. 30대의 청춘의 힘이 엉뚱한 데로 흐른 것이었다. 산재 환자로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동안 다른 간병인과 바람이 났다고 했다. 참, 사람의 일이란 기상천외하다. 남편의 사고에 온 힘을 다해 간호해 주던 조강지처를 배신하고 딴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하였다. 그 후 그런 일로 병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고 나중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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