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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29. 2022

배반의 계절

X - 선 실장의 죽음과 배반


죽음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고 그 주위엔 무수한 감정의 흐름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2003년 어느 날, 멀쩡하게 잘 근무하고 퇴근한 방사선과 실장이 다음날 아침, 소파에서 불귀의 객로 누워 있었다.


부인의 진술에 따르면, 여름날 열대야를 피해 거실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출근 준비를 하지 않고 누워있는 남편을 깨우다 생명과 영혼이 꺼진 남편을 목도해버린 것이었다.


그 소식을 받아 든 아침, 나의 조그만 왕국, 병원에서는 혼돈과 경악으로 어수선하였다. 그의 나이 49세, 고등학생 아이 둘, 임상병리사인 부인을 세상에 두고 홀연히 육체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말았다.


 날, 퇴근 무렵에도 '소주 한 잔 하자'라고 제안을 할 정도로 멀쩡한 사람이었다. 그 청을 거절한 물리 치료실 직원이 큰 눈을 굴리며 미안해하고 당혹해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가 조금 피곤해 보이고 슬퍼 보였다고 하였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의 첫인상은 그다지 호감이 가는 얼굴이 아니었다. 처음, 병원 취업을 위해 면접을 할 때, 말 수가 없이 조용한 인상에다 깡마른 얼굴이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원장인 나보다 6살이 많으므로 웬만하면 물리칠까 하다가 누구의 소개로 왔고 사무장이 1차 만나보니 사람 됨됨이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근무하기 시작 후, 2년여를 지켜보니 참으로 사람이 겸손하며 업무에도 성실함 그 자체였다. 그는 지각 한번 하지 않고 방사선 업무를 잘 해내면서 연장자로서도 직원과의 화합을 잘 이루어 내는,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술자리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형님으로 모신다면서 오래 병원을 같이하자고 칭송하면 부끄럽고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던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유언장 하나 없이 부인과 어린 남매를 남기고 돌아오지 못하는 먼 영면의 세계로 떠나 버렸다.


아침 출근 후, 사무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이 20명 남짓 되는 작은 정형외과 병원이지만 나에게는 우주와 같은 크기였다. 원장은 한 기업의 CEO 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며 경영해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쟁은 곧 품질의 향상을 가져온다는 자본주의의 생리 아래 국민의 건강을 담보하는 의료계마저도 무한의 경쟁에 내몰려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경쟁하여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병원의 원장은 진료가 곧 생산이므로 생산의 일선에 있으면서도 경영이라는 과업을 동시에 짊어져야 해서 어떤 CEO보다 더 고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리더십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직원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왔다. 입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중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애정이 직원의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다. 선장을 믿고 하나의 목표로 항해하는 단결력과 공동체 의식이 모아져야 조직이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직원들을 향하여 모두가 상주가 된 입장으로 장례에 임하자고 제안하였다. 오전에 접수한 환자를 제외하고 일단 진료를 중지하기 위해 접수를 마감하였다.


직원 모두가 조기를 달고 빈소가 차려진 일산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향을 피우고 잔을 올려 절하니 인생이 참으로 허무하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상복을 입은 부인과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사무장을 장례식장에 상주하도록 하고 직원들문상객 접대에 손을 보태라 하고 한참 후에 장례식장을 나왔다.


다음 날, 유족을 도울 방법을 사무장과 의논하였다. '과로사'로 인정될 수 있도록 산재신청을 하였더니 순조롭게 승인되어 1억이 넘는 보상금을 부인이 수령하였다.


산업재해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장들은 회사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산재 승인을 한사코 피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원장이 직접 나서서 도와 주니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개인적인 위로금을 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이만하면 병원 원장으로서 또는 중소기업 사장으로서 직원의 사망에 섭섭한 대우는 아니라고 자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라고 결론이 난 것은 장례식 후, 6개월쯤이었다.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사망한 실장의 부인이 나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온 것이었다. 자기 남편을 과로로 내 몰아 사망에 이르게 한 비도덕적 원장에게 1억 7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소장이 날라 왔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배반감에 치가 떨렸다. 병원 업무 중 사고로 사망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일어난 의문사였다. 과로라면 최근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하여 지방까지 무리한 운전과 리적 번민이 더 우선이라 할 수 있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원장에게 산재 승인이 되고 보상금을 받고 난 후, 더 큰돈을 받아 낼 욕심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였던 것이었다.


괘씸하였다.


필시 변호사 사무장이 사주를 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인 스스로가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장의 부인은 이전에 병원에 얼굴을 내 보인 적이 없는 여인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회식이나 체육대회 등을 통하여 만나왔고 가족들이 친근한데 유독 이 부인만은 한 번도 병원 행사에 참석한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이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부검에서 약간의 심근 경색 의심 외에 특별한 사인이 발견되지 않았고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과연 병사인가, 아니면 외인사인가?


평시에 부부관계가 원만했으면 병원 행사 참석이나 직원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을 텐데 장례식장에서 처음 볼 정도로 아무도 그전에 만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실장 스스로 입이 무거워 가족사, 특히 부인에 대하여는 함구하였다 하니 이 여인의 정체에 대하여 알 길이 없었다.


드디어 나는 극도로 화가 난 상태로 상대편 변호사 사무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겠소! 산재 취소를 신청하겠소!"


우리도 최고의 변호사를 위임시켜 사망원인부터 재조사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순간은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미 산재 승인에 도움을 줄 때부터 고용자에게 오는 피해를 감수한 나였기에 이제는 신뢰에 배반한 인간에게 철퇴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를 통하여 능력 있는 변호사를 알아보는 상황에서 사무장이 의견을 말했다.


합의하는 것이 어떠신지? 소송은 길어질 것이고 아이 데리고 와서 우는 미망인에게 판사가 동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며칠 후, 4천만 원만 주면 소송을 취하하고 원만하게 마무리하겠다고 상대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아마도 격앙된 나의 전화가 부인의 설득에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위로금으로 수천은 생각하고 있었기에 며칠간의 고민후 합의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씁쓸한 결론이었지만 죽은 실장은 말이 없고 산 자들이 고인의 죽음을 통하여 이익을 다투던 모습은 시체를 뜯어먹는 하이에나와 무엇이 다른가!


지하에 누운 방사선 실장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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