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 뼈가 부러져 청바지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총검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94년도의 한 여름밤에 나는 2년차 레지던트의 보고를 받고 직접 응급실을 찾았다.
20대 초반의 젊은 환자로 얼굴이 희고 이목구비가 아름답게 배치된 미남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강남 거리의 '야타족'이 토요일 밤에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헬멧도 없이 뒤에 아가씨를 태우고 질주하다 빗물에 파인 아스팔드 홀을 피하지 못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불쌍한 여자 아이는 결국 더 높은 하늘나라로 승천해 버리고 이 철없는 오렌지 족은 땅으로 부딪혀 그의 오른쪽 대퇴골을 아작 내어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의 뼈들 중 가장 단단하여 부러지기도 힘든 허벅지 뼈를 갈랐으니 그 충격의 강도가 어마어마하였다. 그런데도 의식은 명료하여 생명은 용케 살아난 것이 신기하였다.
진단명은 대퇴골 간부 개방성 분쇄 골절.
일단, 16주의 진단 주수가 나오는 중상에 해당하며 개방성이기 때문에 세균 감염에 의하여 골수염이 예상되고 반드시 응급 수술하지 않으면 평생 불구로 지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치프 레지던트로서 4년차였던 나는 응급 수술을 준비하라고 오더를 내린 뒤 당직실로 올라갔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낮과 밤이 다르듯이 대학 병원의 낮과 밤도 정글만큼 달랐다. 초식 동물이 평화롭게 초원을 노니는 낮이 지나고 밤이 되면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기로에 놓인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처절한 승부가 펼쳐진다.
응급실이 정글의 밤이다.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당시 대학병원은 낮에는 스텝, 즉 교수님의 세계였고 밤은 치프 레지던트, 즉 4년차의 세계였다. 치프 레지던트의 위상은 밤의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였다.
임상 교수들은 퇴근 후나 주말은 업무에서 해방되어 온전한 자유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였다. 응급 콜 없이 가족과 편안한 생활을 즐기는 것이 대학 병원 임상 교수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밤낮으로 혹사당하는 전공의들의 희생이 강요되었고 응급 콜을 스텝에게 한다는 것은 레지던트의 무능이요 찍히는 것이기에 절대 밤에 교수님을 불러낼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대학 병원이 종합 병원보다 못한 꼴이었다. 종합 병원에서는 전문의가 응급 콜을 받아 그래도 경험 많은 의사가 집도를 하는 반면 대학 병원의 응급 수술은 레지던트 4년차가 집도하므로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4년간의 훈련과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실력이 충분하다고 자부하지만 경험이 적은 전공의 수술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에 따라 그날 응급실로 실려오는 환자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당직 레지던트들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최고의 오야붕, 4년차 치프가 밤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응급 수술을 준비하기 위하여 넘어야 하는 큰 산이 하나 더 있다. 마취과 치프 레지던트의 마취 오더가 떨어져야 한다.
정형외과 의국 내에서는 내가 사자 우두머리이지만 마취과에 또 다른 제국, 하이에나 왕국이 있는 것이다. 각과에서 들어오는 응급 마취 청구를 위험도와 중요도를 기준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대었다.
정형외과는 목숨이 경각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항상 뒤로 밀리는데 그날도 좀처럼 수술실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개방성 골절도 상당한 응급이다. 왜냐하면 골든 타임이라고 있는데 사고 후 약 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8시간 이상 경과한 후 고정 핀 수술하게 되면 세균이 증식하여 필시 골수염에 빠져 평생 불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합병증이 많은 외고정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골든 타임 내에 수술하기 위해 2년차를 다그쳤다. 몇 번을 마취과 당직실을 들락날락하였으나 퇴짜를 맞고 돌아왔다. 할 수 없이 3년차를 불렀다.
"선 선생이 직접 나서봐야겠어! 마당발이 잘 좀 설득해줘!"
당직은 주로 2,4년차와 1,3년차로 페어가 된다. 4년차가 응급 수술을 들어가게 되면 3년차가 나머지 응급을 진두지휘하게 되어 있음으로 4년차가 직접 3년차에게 오더를 내리는 것은 좀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래도 사람 좋은 선 선생은 흔쾌히 마취과를 설득하여 수술실 문을 열어 주었다. 환자 상태를 보더니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수술 케이스에 흥미를 보이며 한 수 배우겠다고 하면서 미리 수술 준비까지 도와주었다. 물론 서큘레이팅으로 관전만 하면서 언제든지 외부 응급 콜에 대비하였다.
"아니!!!"
수술 준비가 된 환자의 골절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3년차가 도와준다는 것이 너무 오버를 하고 말았다. 총검같이 날카로운 골절면이 론저라는 수술도구로 마구 갈아놓고 뭉개어져 있었다.
"이렇게 골절면이 변형되면 정확한 접합이 안되잖아!"
골절 유합은 미국 골절 학회가 제시한 정교한 접합과 단단한 고정이 있어야 뼈가 제대로 자라나와 붙는 것이다.
"아!... 골절 부위에 아스팔트 아스콘이 많이 묻어 있었어요. 잘벗겨지지 않아 뼈에 손을 좀 대었습니다."
"그랬구먼...철저히 소독만 하고 골절면을 내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너무 심하게 했어. 암튼 수고했어"
그래도 수술방을 열어주고 치프의 수술까지 도와주는 3년차의 성의가 고마웠다.
골든 타임 안에 수술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였고 골수염 방지를 위해 허벅지 아래쪽으로 배액 창을 많이 만들어 수술 후 감염에 대비하였다.
수술 후 2주까지는 안심을 못하였다. 높은 수준의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상처를 철저히 관찰하고 배액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직접 상처를 치료하였다.
천우신조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 오렌지 족에게 신의 가호가 내려졌는지 2주가 지나 염증 없이 실밥을 풀 수 있었다.
목발로 퇴원하는 그에게 웬만하면 바퀴 2개를 타지 말고 바퀴 4개인 것을 타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하였다.
지금쯤 50세가 다 되어가는 그 오렌지는 강남의 어느 곳에서 포르셰를 타고 또 여자를 태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