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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25. 2022

어떻게 할 것인가? 94세라는 나이.

94세 어머니의 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저의 어머니라면 수술을 선택하겠습니다!"


고뇌에 찬 71세의 효자 아들은 망설였다. 그래도 나는 더욱 다그쳤다.


"연로하시지만 정정하십니다. 가능합니다! 수술 결과가 좋으면 완전히 회복하여 여생을 고통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고관절 골절은 자연적으로 뼈가 붙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술해야 하는 골절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 속에 누워만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겁니다."


확신에 찬 전문의의 권유에도 고집에 찬 노인은 의심과 불안으로 작은 눈알을 굴리기만 하였다.


1995년 10월, 나는 최신의 정형외과 수술 기법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로 서울 영등포, 충무 병원, 정형외과 제2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전문의 면허증의 잉크가 겨우 마르긴 했어도 아직 너무나 젊고도 경험이 짧은 초자 외과 의사였다. 그래도 의지와 투지만큼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갓 취득한 전문 의학 지식은 최신 트렌드를 섭렵하였다.


벌써 병원에서 보여준 나의 수술기법으로 수술실 간호사나 마취의사도 인정하여 주었고 원장님 조차도 나를 예의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서울대학교 정형외과 전문의로만 이어져 온 병원이 최초로 경희대학교 출신의 전문의를 채용하였으니 그 결과가 매우 궁금했던 것이었다. 월급 의사였지만 타 직원보다도 10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기에 나는 스스로 '경영진'이라 자부하며 능동적으로 처신해 나갔다.


고에서 잠자던 미세 현미경을 꺼내어 먼지를 닦고 가동해보니 정상 작동하였다. 그로부터 손가락 절단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후송하지 않고 접합 수술을 시행하였다. 2mm도 되지 않는 동맥을 이어주는 기술은 정형외과 수술에서 최고의 난이도에 속한다.  젊은 눈과 막강 체력으로 밤에 나와 응급 수술로 손가락 접합 수술까지 자발적으로 시작하니 원장님이 매우 흡족해 하였다.


그날도 아침, 출근하니 94세의 할머니 환자가 나에게 배정되어 있었다. 새벽어둠에 화장실 턱을 넘지 못하고 실족하였다.


대퇴골 경부 고관절 골절.


한마디로 엉치뼈가 부러진 것이다. 노인성 골절 중에 상당한 합병증이 있어 수술하지 않으면 2년 내에 70%의 환자가 사망하고 수술을 하더라도 30% 정도는 2년 내에 생을 마치는 위험한 골절이다. 94세라는 연세에 6개월도 장담 못하는 골절이었다.


의심 많은 그 보호자는 결국 대학병원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초보 정형외과 의사를 믿지 못하는 그 효자 노인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씁쓸한 마음으로 앰뷸런스를 부탁하여 카톨릭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후송하였다.


이틀 후, 94세의 할머니는 다시 우리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의료진과 대판 싸웠다고 하였다. 70대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90대의 어머니를 위하는 효성으로 가득 찬 보호자는  대학병원의  스텝과 레지던트들이 너무나 불친절하고 성의가 없었다고 하였다.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

알아서들 하세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어머니를 둘둘 말아 다시 첫 병원으로 돌아왔다. 아마 진상 보호자라고 낙인찍히면서 왔을 것이다.


내심 반가우면서도 불안하였다. 수술이야 자신 있지만 전신 마취를 견뎌내실지 매우 우려가 되었다. 다음 날 수술 스케줄을 잡고 특별히 마취과 과장님을 찾아갔다.


"형님! 94세 할머니이신데 괜찮겠습니까?"


서울대 출신 마취과 전문의로 그 병원에서만 20년을 근속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 마취과 의사였다. 차트에 보이는 혈액검사와 몇 가지를 훑어보고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괜찮겠어! 남 과장이 간다면 같이 가는 거지! 단 수술 승낙서는 꼼꼼하게 잘 받아!"


마음이 든든하였다.


다음날 첫 수술로 마취 과장, 마취 간호사, 수술실 수간호사, 레지던트 3년 차, 서큘레이팅 간호사와 함께 집도의로서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수술에 임하였다.


전신 마취를 시작하고 환자가 잠이 들면  수술 위치로 환자를 90도로 돌린 뒤 소독을 하기 시작한다. 포타딘, 알코올, 다시 포타딘으로 수술부위를 도포한 뒤 수술포를 덮어 수술 위치를 개방하여 그 위에 접착 스트렙을 붙인다. 그리고 '인시젼'으로 들어간다.


'인시젼'은 수술부위의 피부 절개를 하는 최초의 행위로서 주저 없이 한 번에 '좌~악'하고 그어야 나중에 흉터가 덜하다. 그리고 이것은 외과의사만이 즐기는(?) 하나의 준엄한 행위이다. 이때 절개와 함께 신속하게 선혈이 흐르면 혈액 순환이 좋다고 보기 때문에 염증 같은 수술 후 부작용이 적어 흐르는 피가 반갑다. 그러나 출혈이 지체되거나 희미하면 수술하기는 편하나 수술 후 합병증이 걱정된다.


9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혈관 건강이 아주 좋아 수술 절개를 넣자마자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햐! 좋습니다. 잘 회복하겠네요. 감사합니다. 장 과장님!"


만약을 위하여 수혈 팩도 준비하였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음 단계로 수술을 진행해 나아갔다. 피부를 지나 피하지방을 제치고 근막을 만나 결을 따라 근막과 근육을 벌려 골절 부위로 접근하였다.


수술 기법은 인공 관절 치환술이었다.


부러진 대퇴골의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니켈합금으로 잘 만들어진 고강도의 인공관절을 대신 집어넣어주는 것이다.


두 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무리하고 피부봉합을 마쳤다. 문제는 마취에서 환자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젊은 환자만큼 마취에서 잘 깨어나 힘차게 기침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25년 마취 노하우를 발휘한 베테랑 마취과장의 솜씨로 그렇게 부드럽게 마취에 깨어나는 환자를 처음 본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걱정과는 달리 수술 회복이 정말로 빨랐다. 수술 후 3일 만에 보행기를 이용하여 걸을 수 있었고 1주일 후 목발로 걷고 2주 후 피부 스테이플을 제거하고 목발 없이 걷고 퇴원하였다.


최고령 수술 기록을 증거 하기 위해  기념 촬영에도 흔쾌히 응해 주셨고 고집쟁이 효자 노인에게서 촌지라는 봉투도 받아 보았고 무엇보다도 젊은 의사에게 보내는 94세 할머니의 선한 믿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근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되고 의사라는 직업이 참으로  쓸모 있다고 생각되었던 인생의 경험이었다.


물론 그분은 고인이 되어 극락왕생 하셨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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