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형목수 Aug 11. 2022

사랑과 죽음

아내의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큰 질문 앞에서 어떤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폐암에 걸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절규하였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심리학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에 세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어야 성숙하고 완전한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첫째는 열정(Passion)을 제시한다. 상대에게 본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적인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친밀감(Intimacy)을 꼽는다. 같이 있고 싶고 보기만 해도 행복감이 흐르는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헌신(Commitment)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상대를 지켜주고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약속이며 확신이다.


이러한 열정, 친밀감, 헌신이 조화롭게 잘 버무려진 사랑이야 말로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보았던 그 남자의 사랑이 그러한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2001년, 바람도 따스한 봄의 어느 한 날에 30대 중반으로,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여성 한 분이 진료실을 찾았다. 평소 다른 일로 가끔 병원을 방문했던 환자로, 그날은 본인이 스스로 가슴 X-선 촬영을 한번 받아 보고 싶다고 했다. 혈색이 나빠 보이지도 않았고 의심할만한 증세는 없었지만 건강체크라 생각하고 검사를 의뢰하였다.


그러나 엑스레이 필름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른쪽 폐의 중간 부위에 지름 6cm가 넘는 큰 혹이 발견되었다.


30대의 젊은 환자가 폐 엑스선 검사에서 큰 종양이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악성종양인 폐암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불안해하는 환자를 안심시키면서 인근 대학병원으로 진료 의뢰를 하였다.


며칠 후, 감청색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남편이 찾아왔다. 30대 말 정도의 나이에 첫인상이 좋은 남자였다.


"감사합니다. 빨리 발견하고 신속하게 조치해 주셔서..."


어쩌면 불행의 시작, 그 입구를 열어준 의사에게 고맙다는 말은 솔직히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하였다.


결과는 역시 악성종양으로 판명되었고, 수술도 불가능하고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에도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고약한 암이라고 하였다. 그야말로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고 남편 혼자 쓸쓸하게 돌아온 것이었다. 그의 선한 눈동자는 깊은 고독과 함께 아내의 병을 완치시키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미국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치료기법이 앞서 있는 암 치료 전문 병원으로 가기 위해 출국 수속 중이며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은 애절함이 그의 얼굴에 가득하였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팀장으로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직장까지 퇴직하고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이미 쇠약하여 걷지 못하게 된 아내를 데리고 먼 길을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휠체어 구입과 여행 중 통증을 다스리기 위한 주사약과 주사법을 가르쳐 주었다.


출국하는 날, 남편과 아내가 휠체어와 함께 나에게 들렀다.


2개월 사이에 거의 초주검 상태까지 이른 환자를 보고 그 병의 악독성에 내심 놀랄 뿐이었다. 눈도 깜박이기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완치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이야기하며 진심으로 희망의 불씨가 활활 타 오르기를 원하였다. 장거리 비행기 여행에 견딜 수 있도록 처방하여 조치하고 여분의 약을 챙겨 출발하도록 하였다.


인생사의 희로애락은 안중에도 없는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바쁜 일상으로 그 부부가 잊혀가던 늦가을 어느 오후에 남편이 병원을 방문하였다. 수염도 깍지 않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사랑하던 아내의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찾은 것이었다.


미국에서 2개월간 암 치료를 시도해 보았으나 차도가 없었고 인생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하여 귀국한 뒤, 몇 개월 더 버티다가 1주일 전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아내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같이 아파하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절망과 희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하였는지, 아무 말하지 않는 그에게서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집사람이 사용하던 휠체어를 병원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깨끗이 사용하다가 꼭 필요한 분이 나타나면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제가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선생님같이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을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5세쯤 되어 보이는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한 남자의 진솔함이 묻어 나왔다.


그로부터 5개월 뒤에 휠체어를 가지고 나타났다. 동네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한다고 하였다. 그동안 번민하다가 다시 증권회사에 취직하였는데 그 기간 중 IMF로 빠졌던 주가가 다시 치솟아 오르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였다. 아내의 치료를 위해 낸 빚도 다 청산하고 서울에 아파트를 구입하여 이사 떠나는 길에 병원을 들렀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다시 결혼하셔야죠."


무거운 분위기에 던진 농담에 어색해하는 그의 표정이 그가 떠난 뒤에도 왠지 가슴에 남아 아픈 느낌을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할 것인가? 94세라는 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