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잼 Aug 14. 2021

소통의 오류

여보세요 나야

내 말 듣고 있는거야?


아무런 상념이 없는 오후를 보냈다. 


폭풍우가 친 뒤 고요해진 바다처럼, 전쟁이 쓸고 간 뒤의 흔적처럼, 잔뜩 피를 흘린 뒤에 겨우 얻어낸 평화였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리던 일을 드디어 해치워버렸다. 계속 피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하고 자체 거리 두기를 시행했지만,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결국 미운 말을 쏟아냈다. 도망치기를 그만두고 마주하기를 선택했던 건 적어도 나만은 내 편이 되어줘야지, 하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주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침부터 정신이 자꾸만 아찔해졌다. 이미 참아온 몇 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니 이게 맞을까? 정말 이래도 될까? 마음의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마음과 이 아찔함을 저울에 달아보고 어느 게 더 싫은지 가늠해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하긴, 어느 쪽이 확실하게 적었더라면 이 고민은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장문의 카톡을 써 내려갔다. 

블라블라… 이해와 오해… 그래서 당신이 싫습니다. 

싫다는 이유를 돌리고 돌려서 두루뭉실하게 포장해서 숨겨보려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너를 이해하지만, 나는 불편해. 

그리고 짧은 호흡에 한 번에 다다다 보내버리고 얼른 엔터를 눌러버렸다. 


그리고 얼마 간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고민한 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은 시간이 지나고(1분도 안걸렸다. 1분도. 나의 고통은 몇달째였는데!)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게 그래,라고 했다. 그래,라는 말이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듯 보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해받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어차피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불편한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 나를 이해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소란스러운 아침이 지나가니 고요한 오후가 찾아왔다. 

오랜만의 평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